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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n 05. 2023

불편함을 찾아 나서는 용기

아직 안주하고 싶지 않아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은 근 10년 만이다.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를 먹이고 재우고 살려야 하는 보호자가 된다는 건 보장되는 자유만큼이나 안정감이 반비례한다. 그 불안정함을 그리면서도 부담이 되어 떠나기 전부터 적잖이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치앙마이로 한 달 살기를 하러 떠나는 출국 날, 캐리어를 챙겨서 집밖으로 나선 순간 잡고 있던 손잡이가 댕강 잘려 떨어져 나갔다. 시작부터 뭐야. 불길하게..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대로 나가는 수밖에. 공항에 도착해 수화물을 붙이려고 옆에 붙어있던 손잡이를 잡아 든 순간, 나머지 한 짝도 유명을 달리했다. 수화물 택을 붙일 곳이 없어 승무원도 나도 진땀을 뺐다. 시작부터 삐거덕대는 이벤트로 힘이 빠졌지만 액땜 제대로 한 거라고 등을 두들겨 주는 친구의 말에 마음의 수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행자 신분으로서 맞이하는 세 번째 날,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다가 한쪽 교정기 유지장치가 톡 하고 끊어져 버렸다. 별일 아닌 듯했지만 별일이라는 걸 알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튀어나온 유지 장치가 혀에 쓸려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음미하고 있는 이 맛이 팟타이 맛인지 내 피맛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몇 번은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달 동안 이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진짜 되는 일이 없네. 한 달 동안 이러고 어떻게 살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하며 짜증 부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한참을 씩씩대다 제 풀에 꺾여 버렸다. 그동안 내가 누린 그릇은 얼마나 많은 나를 담아내고, 살려냈던 걸까. 한참을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흘 째 되는 저녁, 집에 돌아와 씻으려고 하는데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밤 씻을 때 물이 시원찮게 나오긴 했는데 하늘이 무너지듯 퍼붓는 폭우 때문에 그럴 거라고 넘겨짚은 게 화근이었다. 바로 주인한테 연락을 취하니 내일 기술자를 불러준다고 한다. 체감 온도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여행자라는 신분에 걸맞은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불운의 나무가 내린 열매가 내 앞에 보란 듯이 툭툭 떨어진다. 아 여행은 정말 현실이구나.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이벤트 꽃이 터지니 신기할 따름이다.



버블티가 먹고 싶었던 며칠 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컨디션이었다. 배달 주문앱을 켜고 주문을 시도하는데 어딜 봐도 꼬부랑 그림체의 태국어뿐이었다. 번역기를 돌려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3가지 옵션 중에 선택하는 항목이 있었는데 느낌 가는 대로 찍는 수밖에 없었다. 운이 따르길 바라며 기도한 지 20분 후, 내 손에 들려있는 건 한파도 녹여낼 만한 핫팩 대용의 버블티였다. 배달원에게 뜨거운 음료를 건네받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작열하는 태양만큼 뜨끈한 버블티란..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마셔볼 수 있을까.




쌓인 빨랫감을 가지고 세탁소에 가는 길부터 한 달짜리 유심을 사러 가는 길, 택시를 부르고 배달을 주문하는 것 모두 그 출발선에선 온 감각이 긴장 모드로 활성화된다. 이상한 곳에 데려다 주진 않을지, 잔돈을 잘못 돌려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소통이 안되면 어떡해야 할지,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면 제대로 화를 낼 수나 있을지 하는 갖가지 상황을 대비하는 걱정과 망상들. 그 모두를 며칠 동안 꽁꽁 싸매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외면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일정을 최대한 미루고 지금은 걷는 게 더 좋다고, 진짜 걷고 싶어서 걷는 거라고 내 앞에서 우겼다. 녹아드는 햇볕이 우습게 매일 2만 보씩 걷고 또 걸었다.



가지각색 상황별 망상으로 무장하여 내디딘 첫 발은 서툴지만 거침없었다. 매일 별생각 없이 하던 일이 이곳에선 세발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이제 막 넘어온 8살 아이가 넘는 굽이진 언덕이 된다. 언덕을 넘고 나서야 비로소 해냈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네, 라며 마음을 쓸어내리고 뿌듯함이 묻어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이상으로 열리는 폭이 넓어지기에 사람들은 멀리 떠나고 싶어 하고 결국 떠나게 되는 걸까.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쩌면 매일같이 나를 불편함에 내놓는 연습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세상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여전히 떨리고 긴장된다. 그렇다고 나를 치장하거나 가공하는 수단으로 쓰고 그리고 싶진 않다. 나의 상실과 슬픔, 초라함을 있는 그대로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내 삶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사랑하게 될 수 있으리란 걸 알고 있다.



나는 나를 부수고 싶다. 내 앞을 가로막고 시야를 가린 벽을 계속 부수며 살고 싶다. 도전하며 개미 반발자국만큼이라도 나아가고 싶다. 겁쟁이의 불편한 버둥거림으로 쓴 글이 누군가를 자유롭게 만들고 숨통을 뚫어주는 길로 열리길 바란다. 그럼 한층 더 쓸모 있는 버둥거림이 되리라 믿는다.



오래도록 세상에 나를 던지며 사는 어른을 꿈꾼다. 역동적으로 행동하고 나를 깨부수다가 여정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엔 힘이 더 세져있기를 바랄 뿐이다. 남은 시간 편하지 않은 것들에 나를 내놓았을 때 벌어질 일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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