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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Sep 23. 2023

딱히 별다른 방도가 없으니까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어제는 몸을 굽혀 쓰다 깨달았다. 불쑥 또 좋아하는 일에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하루를 앗아가 삶이 간단치 않아 졌다는 걸. 좋아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냥 하는 것. 그냥 해지는 것. 하려고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의 외침에 따르는 것. 어렸을 적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수순인 듯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색연필, 팔레트를 펼칠 대로 펼쳐 그리고 뜨개질을 하고 인형을 만들고 색종이를 오려 접고 반짝이를 붙이는 행위들에 가깝겠다. 머리를 굴려 행동에 따르는 가시적인 성과와 이윤을 따지지 않고 아니 따질 틈 없이 몸이 먼저 쪼르르 가서 하고 있는 것. 아니 다시 처음부터 따져보면 가시적 변화에 따른 신체 반응이었던 것도 같다. 손에서 모습을 달리하는 한 컷 한 컷의 여정과 좇으려고 한 결과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을 때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마음은 나를 채우고 계속 그리하도록 만들었으니까. 나름의 경험치로 정의 내린 좋아하는 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느 날의 나를 가만 보고 있으면 그 정의에서 먼발치 풀려나있다. 그게 문제일까. '그냥' 하는 일이라면 조바심도 일비일비심도 수면 위로 떠오를 일 없을 텐데. 빈번히 원치 않는 마음과 맞닥뜨리는 건 이건 내게 주어진 운명과도 같은 멋진 일이잖아, 하는 대단한 착각이 나를 집어삼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젖게 된다. 속 안에 지니고 있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었던 처음 시작은, 칙칙하기만 한 현실의 옷을 벗어던질 수 있는 최적의 방책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지만 서로의 아픔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세상과 내통하여 치유받을 수 있었으니까. 1년이 흐른 지금 같은 자리에서 생각한다. 소싯적 가져보지 못한 꿈의 탐함을 '좋아하는 일'이라는 그럴싸한 명제 뒤에 숨으려 한 것은 아닐까. 곯지 않기 위한 삶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몸을 구부려 저장된 에너지를 모두 털어내고 누운 팍팍한 밤에 자주 그랬다. 왜 이렇게 나눠 살아야만 하는지 내가 짠 삶의 얼개를 벗어나고 싶어 열심히 버둥거렸다. 혼자 하는 편애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다시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 뒤척이는 애씀이었다. 본래적 자아가 숨 쉴 수 있는 일과 오래도록 이어지고 싶은 눈물 젖은 바람이었다.



풀림 없는 시름의 짐을 등에 업고 꼬리가 보이지 않는 질문 열차에 몸을 싣는다. 왜 나는 쉽게 살아지지 않는 걸까. 그럭저럭 살 만한 것 같았던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걸까. 나는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그럼에도 왜 이걸 놓지 못하는 걸까. 

왜 이걸 놓지 못하냐면,
지금 딱히 별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천장에서 맴 하고 공회전하는 이미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들. 남은 효력도 의미도 다해가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나를 이해시키고 내일을 위해 눈가를 말리고 잠에 든다.



그간 나도 모르게 흘렸던, 떨어뜨렸던, 놓치고 있던 의미들을 부지런히 줍는다. 주어 온 그것들이 부서질까 고이 쥐고 파란색 일기장 안에 끼워 넣는다. 흩어져 있는 의미들을 한데 모아 오늘을 작동시킨다. 불안의 관성을 끊어내지도, 꿈 언저리에 매달려 손을 놓지도 못하는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오히려 쉬워질까. 끈 하나로 가른 낮과 밤 두 개의 삶 경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으로 하루는 팽팽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인생의 진리. 세상은 나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외려 그 반대편으로 멱살 잡고 끌고 가면 끌고 가지, 내가 맞춰놓은 방향과 등지고 가려한다. 살아내려면, 삶의 기댓값을 낮춰야 한다. 욕망을 등져야 살 수 있는데 스스로 휘두른 욕망의 방망이에 얻어맞아 휘청거린다. 만족하면 덜 비틀거릴 수 있는데 조금만 더 손을 뻗어보려는 욕심에 한 치 앞도 못 보고 넘어져 코가 깨져 엉엉 울고 있다. 길 중간에서 뒷걸음질 치기도 앞으로 한 발 떼기도 애매한 새벽. 비질 소리가 귀에 선해진다. 해체된 과자 봉지, 빈 병, 낙엽들 옆 나뒹구는 푸념들을 빗자루로 쓸어 담아 감정을 처리한다. 다시 또 하루는 굴러가야 하니까.


천장에서 돌고 도는 돌림노래의 지겨운 물음에 오늘도 거드는 한 마디.


딱히 별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 그림의 반만큼이라도 따라 살수 있는 내일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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