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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이부시게 Sep 12. 2024

1년 전 너(나)에게

편지

도서관 수업, 숙제가 밴드에 공지 됐다.

‘1년 전의 자신에게 편지 쓰기’

1년 전의 나는 아득하기만 하다.

기억을 더듬어 나에게 편지를 쓴다.




-1년 전의 너(나)에게-


1년 전, 너 기억나니?

허구한 날 어지럽고, 토하고.

아무 일 없는데도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하고.

누군가의 가벼운 질문에도 머리가 하얗게 되고.

머리는 마치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처럼 지지직 거렸고.

상대의 말은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빠져나가기 바빠서 기억이 없었고,

네가 뱉는 말조차 기억을 못 했잖아.

말들이 공기 속 수증기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지.

어제 만난 사람도 기억을 못 하고, 네가 설거지를 하고도 누가 설거지를 했냐고 묻고, 집안에서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을 못 하는 간헐적 기억상실까지.

치매인 줄 알고 상담을 받았는데 공황장애 때문이라고 했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애써 잊으려는

네 마음 때문에 뇌는 충실히 그 일을 하는 거라 했지. 너의 방어기제로 말이야.

화이트로 틀린 글자만 콕 집어 지우듯,

네가 지우고 싶은 것만 콕 집어 지웠으면 좋겠는데, 뇌는 그렇게까지는 임무수행을 해내지 못했지.


뇌의 회로가 엉망진창으로 엉켜 버린 듯했던 숱한 날들이 얼마나 힘들었니?

직장을 그만두고 몇 달 약을 먹으면서 쉬면, 금세 나을 줄 알았던 공황장애는 그렇지 않았지.

당장 죽을 것만 같고, 미칠 것만 같아서 차라리 미쳐 버리고 싶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했었지.


안 되겠다 싶었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지.

공황발작을 하고 나서는 잠자는 게 두려워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기가 쉽지 않았지. 그런 넌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유튜브에서 브레이너제이를 만났지.

브레이너제이의 말에 위로를 받고 그가 말하는 대로 호흡을 하며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지.

잠도 곧 잘 자고, 수면제도 끊을 정도로 브레이너제이의 숙면여행은 너에게 수면제역할을 해주었지.


네가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그중에서 제일 잘한 건 말이야.

이불 밖으로 나온 일이야.

이불을 박차고 공원으로 나간 날

민들레, 봄맞이꽃, 꽃마리, 초록이들이 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잘댔잖아.

푸른 하늘은 또 얼마나 예뻤니!

결국 넌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지.

생전 처음 혼자 여행도 떠났지.

아프기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잖아.

'여자 혼자? 위험한데... 무서운데...

심심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들로...

그런데 넌 혼자 여행을 멋지게 해내더라.

너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었지.


너 혹시 그거 잊은 거 아니지?

꿈의 노트 말이야.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을 읽고

아침 기상과 동시에 노트를 펼치고 꿈의 노트를 썼었잖아.

1.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서 신나고 즐겁다.

2. 나를 가장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3. 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4. 나는 늘 에너지가 넘친다.

.

.

.

날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쓰고 15번씩 돼 뇌이며 최면을 걸었지.

손목이 아파서 한 달 밖에 실천을 못했지만 분명한 건 네 몸의 호르몬이 바뀌는 것을 느꼈잖아.

우울과 불안장애, 공황장애는 약만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결국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넌 무엇을 할지 정보 찾기에 열혈을 기울였지. 그 결과 지역에 좋은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았지.

네가 작정한 도서관 투어는 널 날마다 외출을 하게 했고, 점점 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지.


너를 찾기 위해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누구보다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잖아.

자연 속에서  너를 만나고, 홀로 여행에서 너를 만나고, 치유프로그램에서 너를 만나고...

네가 너무 기특해. 그 힘든 터널을 빠져나온 너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곧 약도 끊게 될 거야. 걱정 마!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그거 알아?

최근 몇 년 사이에 찍은 사진 중에서 요즘 찍은 사진이 제일 예쁘다는 거?

그래. 그렇게 날마다 환하게 웃어.

너의 웃는 모습은 참 예쁘니까.

꼭 기억해!

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걸!

                                  

                                                 2024. 09. 12

                                        나의 소중한 너에게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한

1. 불안과 불면으로 잠못이루던 밤 –

     브레이너제이의 숙면 여행

2. 꿈의 노트 –

     아침이면 일어나 나의 꿈을 적고

     15번씩 입으로 말하기

3. 산책하기

4. 혼자 여행하기

5. 도서관 및 공공기관 치유프로그램 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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