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을 머금은 들녘이 은빛으로 번져가고, 아득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흐드러지게 핀 들꽃 무리 머리 위로 흩어져간다. 봄의 향연을 알리는 풀내음을 맡으며 꽃밭에서 이리저리 넘놀던 나비 한 쌍은 여유 있는 아침 풍경을 맞이하고있었다.
코끝을 간지리는 꽃바람을 마시며 그렇게 그녀는 학교로 향했다. 배꽃향이 짙은 과수원을 옆에 끼고, 복잡스러운 4차선 도로를 지나 몇 개월 사이 높이 들어선 건물들이 그녀의 마음을 텁텁하게 하지만 반대편 배꽃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발을 보며 조금이나 마음의 평온을 건져본다.
전기자전거를 타며 학교에 가는 남학생들이 그녀의 옆을 지나간다. 봄들녘 풍경을 여기까지 만끽하고 그녀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등하굣길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 녀석 옆에 끼고 학교 가는 길은 지루하지 않아 좋다.
수다스럽게 웃고 떠들고 한 사이 도착한 학교...
정문을 지나니 뒤이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학생들에게 떠밀려 그녀는 교실로 들어갔다. 새 학기가 되고 수일이 흐른 학교생활은 늘 그렇듯 익숙지 않다.
익숙지 않은 얼굴들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더욱 낯선 공기가 흐르고, 얼굴들이 낯선 반친구들을 스윽 지나 맨 앞자리 의자에 앉았다.
10여분이 지나 반 담임샘이 교실여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셨다. 그녀는 쑥스러워 늘 후드티 모자를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처음에는 친구들과 담임샘의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 요즘 마스크를 쓰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반에 한 두 명만이 마스크를 쓰는 것 같다. 그녀는 쑥스러움 때문에 마스크를 눈밑까지 쓰고 담임샘 조회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물론 샘이 교실에 걸어 들어오신 모습을 보지 못했던지라. 그저 샘의 바지와 실내화만 쳐다본 채 조회 말씀을 듣고 있는데, 이상함을 느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목소리인데, 담임샘 목소리가 이상했다. 이상함을 느껴 그녀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바로 앞에 있는 샘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물론 눈이 마주친 샘도 당황한 건 매 한 가지..
"니가 여기 웬일이니?" "허... 헉.. 샘? 여기 3학년 9반 아닌가요?" 낯선 샘이 아닌 익숙한 2학년 9반 담임샘.. 평소 친한 샘과 재회를 했다. 헌데 그녀는 3학년 9반이다. "희주야? 샘이 많이 보고 싶었구나?" 샘은 이 상황이 웃기는지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시면서 친히 교실문을 열어주시며 그녀에게 "1 교실 잘 들어. 잘 가!" 하며 남자샘이지만 세심한 배려로 그녀는 교실문을 나오면서 "아.. 샘! 당분간 샘 못 뵈러 와요. 아... 앜." 그녀는 쥐구멍이 있다면 쏜살같이 달아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지. 희주야? 수업 잘 들어.." 하시며 당황해하지 않으신 척 그녀를 자연스럽게 배웅해 주셨다.
아니 그렇다면 자신이 앉은자리의 학생은 어디 간 거지? 의문이 들었는데.. 하필 그 학생은 결석했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접했다.
서둘러 그녀는 자신의 반 교실을 헐레벌떡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담임샘이 아직 오시지 않은 상태였다. "얘들아? 나 오늘 레젼드 찍었다. 나 10분 동안 2학년 9반에 가있었다. 아.... 창피해." 옆에 친구들은 박장대소하며 책상을 두들겼고.. 위로 건네는 친구들과 함께 그렇게 그녀는 새 학기 새 학년, 그것도 고3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