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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21. 2023

생애 최초의 마라톤,

라오스에서 출전하다.


회사에서 어설프게  운동하는 티를 내고 다녔더니, 어느 날 팀장님이 단톡방에 나에게 출전해 보라고 마라톤대회 링크를 보내주셨다. 아직은 ‘굉장한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달리기 소모임에 가입해서 제대로 달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소모임 사람들은 이미 혼자서 하루에 10km씩 완주하거나, 1년에 열리는 각종 마라톤대회를 섭렵해서 각자 신청해서 모여서 달리며 인증사진을 올리곤 했다.

얼떨결에 나간 모임에서 첫 번째 마라톤을 신청했었고 그걸 위해 준비도 했지만 공교롭게 출장이 일찍 잡히면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라오스에서 달리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링크를 눌렀다. 여러 번 결제창에서 넘어가지 않을 때마다 마라톤을 나가지 말라는 계시인가 싶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신청에 성공했다. 이제 이메일로 언제 어디에서 하는 정보가 오겠거니 했지만 한 동안 오지 않았다. 혹시나 먹튀는 아닐까 신경 쓰였지만 라오스 직원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싶어 그대로 시간이 지났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출발 장소는 참파삭 그랜드 호텔이었고, 경로를 보니 메콩강을 가로질러가는 대교를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5km 출전 경로였다.

매일 출근하면서 건너는 다리 위를 마라톤 당일에 달려야 한다. 양방향 합쳐 2차선인 다리를 통제할 것인가 아니면 차도 양 옆의 인도로만 달리게 할 것인가. 알쏭달쏭한 상황에서 라오스 친구가 페이스북으로 출발시간을 알려줬다.

5km 출전자 시간은 6시.

오후 6시 아니고 오전 6시.

14km 출전자는 오전 5시 45분에 출발하고 21km 출전자는 오전 5시 15분인가에 출발한다.

새벽 5시경의 마라톤이라니! 상상하지도 못한 시간대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해가 뜬 후부터는 라오스에서 달리기를 했다가는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하거나, 2차선 밖에 되지 않는 다리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저녁에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 자기 구역이 있는 개들이 떼로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의 생업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을 훨씬 앞서는 시간대가 도로 통제와 여러 가지 사정을 생각해 봤을 때 해뜨기 전에 시작해서 해가 뜨기 시작한 시점에 달리기가 끝나야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다.

금요일 퇴근길에 호텔 주변을 지나치며 보니 이미 천막을 여러 곳에 설치해서 주말에 행사가 있음을 알기 충분했다.

토요일 오전, 습관적으로 보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라오스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행사장에 가면 기념 티셔츠를 나눠준다고 친히 알려주었다.

참파삭 그랜드 호텔에 갈 사람을 모으자 한 사람이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숙소 근처에 늘 서 있는 툭툭 아저씨와 흥정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그냥 타고 출발했다. 기왕 손님을 태운 아저씨는 ‘볼라벤 고원 가보는 거 어때’, ‘왓푸사원에 가는 건 어때’ 하며 계속해서 우리를 더 태우고 싶어 했다. 그때마다 나는 ‘므어이-’, ‘므어이-’ 피곤하다는 말만 연발 대답했다. 왓푸사원은 매일을 달려 그곳을 바라본 후 우리 사무실로 가고, 볼라벤도 이 정도면 가본 듯 한 정도였다.

티셔츠를 수령한 후 마트에서 간단하게 먹을 걸 사고 꽤나 멀리 온 기념으로 생선구이집에 갔다. 관광지인 구역과 떨어져 있다 보니 메뉴판에는 라오어로만 적혀 있었고, 우리는 사진으로 메뉴를 때려 맞춰 주문했다.

메콩강의 물고기는 실로 거대했다. 레몬글라스 줄기를 여러 개 꽂아 비린내를 잡고서 숯불에 구운 고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담백한 생선살을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현지 차량 호출앱을 써서 차를 불렀더니 기아의 모닝이 배차되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생각해 보니 내일 출발지까지 갈 방법이 막막했다. 도착 후 돈을 지불하고 기사님에게 혹시… 내일 달리기가 있는데 출발시간이 오전 6시다. 그래서 오전 5시 30분에 와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는 처음에 오후 5시 30분으로 알아들은 듯했다.

아니요 아니요. 오전 5시 30분이요.

그는 실성한 듯 웃어댔다.

본인 인생에 한 번 정도 일어난 적 있었을까 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안된다면 우리는 다른 차를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와 라오어가 뒤죽박죽인 단어로 우리는 소통을 마쳤고, 일단은 방에 가서 받은 티셔츠를 펼쳐보았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배색된 티셔츠는 기능성으로 얇은 천에 구멍 패턴이 일정하게 뚫려 있었다.


첫 번째 마라톤 출전 기념 티셔츠.

침대 위에 티셔츠를 펼치고 그 위에 내 출전번호가 인쇄된 베너를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었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뒤척이다 선잠을 자고 생각한 시간보다 일찍 정신이 들었다. 새벽 네시 반. 일어나려고 한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일어나는 것으로 결정하고 벌떡 일어났다.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약 두 시간 뒤에 달려야 한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정신이 돌아오도록 몸을 깨운다. 잠들기 전 옷걸이에 걸어놓은 마라톤 티셔츠와 무릎보호대를 차고 헛둘헛둘 다리를 차 올려 본다.

다섯 시 이십 분, 어스름한 새벽 불 꺼진 1층 로비는 고요하다. 정문 앞 소파에서 같이 응원해 줄 그녀들을 기다리며, 차가 들어오는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니 프런트 직원의 기상 알람시간이 울리고 데스크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 분이 지나자 나와 같은 디자인, 다른 색깔의 마라톤 티셔츠를 입은 남자분이 밖으로 나간다.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회를 위해 일부러 이곳에 와서 하루를 머물고 출전하는 것 같다. 그의 등 뒤에는 15km가 쓰여있다. 나보다 약 30분 일찍 출발하는 그 팀은 벌써 출발선에 서 있을 수도 있겠다.

그를 태우러 온 검은색 벤이 그를 태우고 가고, 나는 30분에 올 그를 기다리며 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5시 30분에 새벽을 뚫고 두 사람이 나를 위해 내려왔다. 아직 어제 예약한 차는 오지 않은 상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던 차에 불을 밝히며 숙소 앞으로 ‘모닝’이 천천히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리는 차에 올랐고, 어이없는 시간에 외국인 손님을 태우게 된 그도, 외국에서 마라톤을 참가하게 되는 우리도 크게 웃었다.

이미 여러 명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며 그는 놀라워하며 행사가 꽤나 크다는 것도 알게 된 것 같다. 숙소 앞을 빠져나가자 반대편 차선에서 몇 명이 달리고 있었다. 중앙선에는 베이지색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구간구간에 서서 도로를 지키고 서 있었다.

21km를 달리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들은 몇 시부터 나와서 서 있었을까. 어둠을 뚫고 달리는 이들의 머리와 피부색이 다양했다. 이미 30분을 달리고 있는 그들은 다양한 티셔츠를  입고 새벽공기를 다르며 달리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도 꽤나 흥미로운 광경이었는지 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그랜드 참파삭 호텔이 가까워질수록 쿵작거리는 음악소리가 커진다. 어스름한 새벽을 새하얀 전구들이 불을 밝히며 행사장임을 요란하게 알려준다.

오전 다섯 시 사십 분, 14km 마라톤 출전자들의 출발 시간이 몇 분 남았음을 MC들이 흥겨운 목소리르 전한다. 차를 세운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응원단들은 여기까지 온 김에 다리를 건너 푸 살라오 사원에 올라 일출을 보기 위해 나를 내려주고 다시 출발했다.

출발선으로 가까이 갈수록 기분이 들떴다. 아직은 컴컴한 이른 아침, 백 명은 넘어 보이는 이들이 달리기 위해 새벽같이 모여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START/FINISH’ 라인을 세운 출발문 아래에는 3개의 전광판에 숫자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출발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가 초 단위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흥분을 끌어올린 두 MC가 몇 킬로미터 출전자들이 출발까지 몇 분이 남았음을 목소리르 터뜨린다.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었겠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숫자 몇 가지 말고는 알 길이 없다.

다섯 시 오십 오분. 출발까지 약 오분 여 남았다. 앞뒤로 출발선상에 많이 서 있고, 라오스인 말고도 인도인, 서양인 등 다양한 인종이 같은 공간 안에 서있다.

마라톤 기념티셔츠를 입고 출발 오 분 전이 되자,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그날이 생각났다. 2021년 정도, 코로나가 심해 헬스장은 모두 운영을 중단했고 다양한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나에겐 참으로 답답한 시기였고, 다양한 운동의 가장 기본인 ‘달리기’만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상태였다.

때마침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 어플로 1분 달린 후 3분 걷기 반복을 시작으로 8주 후에는 30분을 한 번에 달렸다는 간증으로 보며 처음 달리기를 시도해 보았다.

그때는 12월 추운 겨울이라 매일 영하 기온이 어느 정도인지, 눈이 와서 갈 수 없는 것인지를 보며 달렸었다. 이틀에 한 번 달리기를 목표로 했다가 기상악화로 방에 머물러야 할 때면 괜히 시무룩해졌다. 그때는 많이 달리면 3킬로 내외였던 것 같다. 8주째 마지막 30분 달리기를 한 이후의 기분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24번의 프로그램을 실패 없이 마쳤을 때의 성취감을 지인들과 나눠봤지만 나는 할 수 없겠다는 말에 이루어 본 사람들끼리의 말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다.

다른 프로그램을 꾸준히 하며 다른 이들이 잘하는 것만큼 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음에 뿌듯함을 가지고 달리기를 해 오며 목표 없이 달렸다.

잘 뛰는 것이 목표도 아니었기에 계속하는 것에만 뜻을 두고 하던 차에 ‘완주’가 목표인 이번 마라톤은 의미가 남달랐다.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달리는 이들과 1등이 목표가 아니라 출발한 곳에 시간 내에 들어오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매일 출퇴근 길인 메콩강 위의 대교를 오늘은 달린다.

인도에서 한 두 명이 달리는 것을 보기만 했지 달리는 날이 올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그날이 되었다.

여섯 시 일분 전. 웅장한 음악이 깔리며 엠씨들이 한층 더 목소리를 돋운다. 이제 30초 남았어요! 20초 남았어요!

전광판의 시간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1초 전, 모든 사람들이 뛰어나갈 준비를 한다.

여섯 시. 출발 소리와 동시에 백여 명 가까이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출발점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호텔을 빠져나간다.

첫 번째 마라톤 출전, 나는 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겠지?


구간별 시작시간. 21km는 새벽 다섯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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