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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21. 2023

고민 끝에, 하노이행으로 정하다

비가 그치지 않는 추석연휴. 안타깝지만 업무는 불가능하다. 대체공휴일까지 생겨서 공교롭게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쉴 수 있는 6일의 휴가가 생겼다. 인천에서 비엔티안행 비행기 안에서 본 기내 잡지에서 쿤밍 근처의 샹그리라를 보았지만, 중국행 비자를 발급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비엔티안에 머물 때 그날 여권을 잘 챙겼다면 어떻게든 신청했을 텐데 여러모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휴가 없이 달렸던 8월. 어차피 찌는 더위에 북적이며 가는 게 의미도 없겠다 싶어 일찌감치 접었었다.

출발지는 팍세. 팍세와 국제선이 연결되어 있는 국가의 도시는 대충 다 가봤다. 다낭, 호이안은 심지어 두 번이나 가봤다. 호찌민도, 씨엠립도. 남들보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아니었는데 인근의 도시는 참 많이도 가봤구나.

쿤밍은 물 건너갔고, 태국은 생각보다 가고 싶지 않고, 그렇다면 하노이다.

하노이를 가려면 비엔티안부터 가야 한다. 팍세에서 가는 노선은 없지만, 오전에 출발해서 갈아타면 하노이에 당일 오후에 도착할 수 있다. 유교문화와 복합되어 있는 하노이의 고대 유적들은 이전에도 호기심 생기던 대상지였다.

처질대로 처진 지적 호기심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하노이행을 준비한다. 비행기, 그리고 어딘가 구도심. 유적지가 많은지를 두 어시간 만에 후루룩 훑어보고서 항공권부터 결제를 시작한다. 사실상 경유지만 라오항공에서 시간을 확인한 후 구간별 예매를 시작했다. 마지막 결제창에서 왜인지 카드 두 개 모두 승인이 되지 않는다.

이럴 수가 있나? 분명히 작년에는 똑같은 앱에서 결제해서 잘 다녀왔는데.

올해 들어 카드를 재발급받아서인지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 안되면 주말에 공항에 가서 예매할 생각으로 아고다에서 호텔부터 예매했다. 호안끼엠 호수가 관광지라는 자료를 보고 그 근처를 알아보았다. 호텔 예매를 진행하자 ‘비행기는 끊으셨나요?’ 하는 창이 스르륵 생겼다! 여기에서 예매를 해도 되겠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는 갈 수 있겠지. 사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도 아니었는데 결제창에서 여러 번 튕기다 보니 그냥저냥 가볼까 하던 마음이, 꼭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졌다.

절실함은 때때로 이상한 곳에서 오나 보다.

공식 항공사와 대행사의 가격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비교가 무슨 필요인가. 심지어 한 구간은 결재 후에 예약이 취소되어서 초조함은 더 커져만 갔다. 취소와 재결제 끝에 항공권과 숙박을 모두 완료하고 나니,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저기 가면 되겠다는 생각만 하던 차에, 여행객을 그대로 둘 리 없는 예약 홈페이지는 알아서 나에게 그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각종 참여형 프로그램창을 띄웠다.

근교 여행, 당일치기 여행, 유네스코로 지정된 하롱베이, 닌빈, 자연경관이 뛰어난 사파 투어, 일일 도시여행 등등. 그중에서 한참을 살펴보며 고르고 골라 두 개를 선택했다. 하나는 여러 가지 문화가 섞인 결과물이 있는 듯한 닌빈의 고대도시 투어가 포함되어 있는 프로그램, 하나는 베트남 도예 프로그램이었다.

몇 년 전 다낭으로 들어왔을 때 공항 면세점의 각종 도자기의 빛감이 마음에 들어 고민 끝에 딱 하나를 골라 사 왔던 기억이 있다. 진청색과 갈색이 오묘하게 섞인 유약은 일반적으로 보던 도자기 색감과 달랐고, 그때 사온 컵을 한참 썼던 것 같다. 그 도자기를 내가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지른 후 그날 가서 보면 그게 될지 어떨지는 가마 속에서 나온 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겠지.

설레는 마음이 하나 없는 하노이행을 떠난다.

20대 때는 새로운 도시 경관이 주는 충격이 여러 자극을 주고 더 깊은 연구를 하게끔 그 나라 언어도 배우겠음 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때의 마음이 다시 일어날지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봐야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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