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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신 Oct 25. 2024

가을 정기연주회

소프라노 조수미 님의 인터뷰를 읽으며 감동받았던 적이 있다. 음악을 대하는 생각이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다.


착각하기 쉽지만 타고난 재능은 남 앞에서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예술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를 통해 전해지도록 사람이 완성되어야 한다. 예술가는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선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180쪽,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이지영, 글항아리, 2021-


나는 한국식 오카리나 <강물처럼>의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부터 가을 오카리나 정기 연주회를 준비한다. 일주일에 하루, 한 시간씩 수업을 하고, 지속적으로 연습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교사들이 모여서 만든 음악 동아리다. 사실 연주회를 준비하는 목적으로 다양한 곡을 깊이 있게 연주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런  내게 음악은 목적이라기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하나의 도구다.

  

연주회가 가까워질수록 여럿이 연습하는 시간은 조금씩 늘어 60분에서 90분이 된다. 주말에는 하루 온종일 모여 음악에 푹 빠지기도 하는데, 연습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지치지 않고 수채화처럼 맑아진다. 그 노래의 감정과 호흡이 몸에 음악 기술처럼 새겨진다.


나는 사실 이따금 박자를 자주 놓친다. 몰입해서 연주해야 손가락의 운지가 정확해지는데 슬쩍 분심이 들면 반드시 어긋난다. 오카리나 연습이나 연주 시간에는 딴생각을 할 수 없다.


시간을 내어 특별히 음악을 많이 듣지도 못한다. 그냥 심장이 뛰는 것과 비슷한 박자로 늘 어딘가 조마조마한 음악을 하고 있다. 그냥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 듣고  잠깐씩 꾸준히 연습할 뿐이다.


아름답고 당당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음악을 하며 사는 것일까 궁금하다. 각자의 악기로 유명해진 연주자들이 하는 일관된 말이 있다. 하루에 8시간씩 혹은 그보다 더 연습에 몰입했다고 한다.


무엇을 좋아해서 몰입하는 이유의 뿌리에 도달하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드러난다. 각자의 이유가 빨아들이는 시간의 흡입력은 모두 다를 것이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2022년에 반 클라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후에 한 말이 마음을 흔들었었다. 그때 갓 스므살인 그는 어느 산속에나 들어가 원 없이 피아노를 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정말 그의 악기가 표현하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느꼈다. 좋아서 연주하는 그의 연주가 어떤 기교나 고난도의 지점에서 내 마음이 뜨거웠던 것이 아니라 그가 대하는 음악적 사랑이 느껴져서 좋았던 것을 알았다.


나는 부는 악기를 사랑한다. 몸이 악기라는 것을 겨우 이해하고, 호흡을 막 시작한 아마추어 연주가다. 연주가라고 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어떤 곡을 연습하든, 마침내 손가락이 알아서 음을 찾아가고 있는 순간이 있다. 음악에 취해서 마음이 혼미해지면 심장은 의외로 아주 조용하고 규칙적으로 뛴다. 오카리나는 생명의 숨이 내는 소리를 전달하는 악기다.

 

한국식 오카리나의 연주곡은 대중가요, 팝송, 창작곡 등 가리지 않는다. 노랫말이 아름다우면 노래를 따라가다가 결국 노래가 따라오는 친근한 반주가 된다. 연주만이 목적인 오카리니스트도 있겠지만 나의 소소한 음악은 들려주는 것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여럿과 함께 어울리고 함께 음악을 듣고 연습하는 시간마다 복잡한 마음을 좀 내려놓으려는 목적이 숨어있다. 몰입해서 연주곡을 들으며 호흡을 다해 소리를 내면 복잡한 마음은 한 뼘 물러나 있다.


해마다 10월 하순에 정기 연주회를 하며 동료들과 한 호흡의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잇는다. 음악적 재능이 있어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연주하는 것이다. 함께 불어도 각자의 정확하고 단단하며 아름다운 소리가 부드럽게 서로의 마음에 스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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