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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신 Oct 18. 2024

가을 산에 오른다

주말에 가을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른다는 생각만으로 호흡이 가빠져 왔다. 그리운 대상이 산의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서둘러졌다. 가을 산에는 무더웠던 여름날에 여문 상수리나무가 있을 오르막이 있다. 대기가 좀 더 서늘해지면 도토리들이 덜어내지 못해 불룩해진 마음같이 툭 떨어질 것이다.

  

심학산은 194미터의 산이다. 산을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배수지와 약천사를 끼고 걷는 둘레길이 있고, 다양한 시작점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넷이다. 나는 늘 출판단지에서 시작하는 4코스의 배밭 길에서 심학산을 오른다.

배밭이 있는 산 입구 아래는 포크레인이 부지런히 땅을 고른다. 무엇을 하려고 길을 닦는지는 모른다. 배밭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산의 입구, 이 길은 누군가의 소유지라 산을 오를 때마다 빨리 지나가고 싶어 진다. 가을꽃 코스모스가 무심하고 아름답게 피어있다.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할 투명한 분홍빛 꽃잎은 고단하고 유한한 삶의 비밀을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전해주는 것 같다.


포크레인이 쓸고 간 황토를 밟고 불쑥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공기가 달라져 있다. 깊고 차게 느껴진다. 밤나무가 떨군 밤 가시는 알맹이를 상실한 채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산에서 맺은 열매를 간직하던 밤 가시는 열매의 추억에 대한 미련도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밤이 없었던 것처럼 알맹이도 없이 산이 좋아서 찾아온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산길에 마중 나와 벙긋거린다.

나는 모든 참나무를 좋아한다. 참나무를 영어로는 오크(Oak)로 부른다. 속이 단단하여 목재로 쓰이고 배를 만드는 재료이며 숯을 만드는 나무다. 참나무는 종류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도토리를 낸다. 우리나라의 산에는 참나무인 상수리나무가 가득하다. 나무가 숨을 쉬는 곳을 오르며 호흡을 고르면 나무를 닮아 건강해지는 것이 분명하다. 심학산에도 상수리나무가 가득할 것이다.

돌바닥 오르막이 나타나면 산의 아름다움은 등산화의 밑창에 부딪힌다. 주말 오전의 어중간한 시간이라서인지 이 지점을 지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조금 오르면 돌탑이 있고 쉼터가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숨을 고르며 쉬어간다. 이 지점부터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계단 길이다. 45도쯤의 가파른 계단 길이라 숨이 가빠지려고 할 때쯤 이미 심학산의 정상 하늘이 보인다.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르면 정상 누각이 있다. 아련하게 흐르는 한강이 푸르게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사람들은 정상의 누각에 올라 숨을 고른다. 부모를 따라 산에 오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참새처럼 들려온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누각으로 올라온다. 땀을 식힌 사람들은 주섬주섬 일어나 막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훌쩍 자리를 뜬다. 멀리 출판단지가 보이고, 한강이 흐르는 모습이 가느다랗다. 가을이 깊어지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던 지난 주말의 산행은 고단한 일주일을 견디는 에너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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