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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신 Oct 31. 2024

가을날에 읽은 소설, 모순

이른 아침의 필사 모임에서 《모순, 양귀자, 쓰다, 2024년 2판(1998년 1판)》의 매력적인 이런 문장을 썼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미루고 미루던 이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어떤 막다른 길목에 도착한 느낌이 들었다. 지은이 양귀자 님은 197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1998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다. 내가 읽은 <모순>은 2판 100쇄를 발행한 2024년 4월의 책이다. 책의 표지는 매 쇄마다 바뀐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양귀자 님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 1987>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따뜻했는지 소설이란 이렇듯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소설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며 현실 같은 허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이런 사람들이 그 마을에서 살며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쳤을 것만 같았다.

이 소설은 17개의 장면으로 엮여있다. 장면마다 보랏빛 글씨로 은밀한 귓속말처럼 작가의 말이 드러나 있다. 작가가 만든 세계의 주인공들은 태어난 그 자리에서 성장하고, 아무튼 선택한 사람과의 삶을 거부하지 않지만 결국 주요 인물 중의 한 명인 이모는 모순 가득한 세상을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심심찮게 보도되는 이런 선택에 대해 나는 늘 아쉽다. 완전하고 완벽한 또 다른 선택은 존재하지는 않는 것일까.


주인공 안진진을 둘러싼 이 소설의 이야기에는 안진진의 부모와 친척들이 주인공의 인생이 속옷과 겉옷처럼 겹쳐져있다. 이모와 이모 주변사람들이 등장하는 강도만큼 안진진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매 순간 안진진의 선택을 모순으로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이란 모순 자체일 것이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내 삶을 변명하기 위해 어머니를 끌어댈 용기를 품게 한 것도 고백하자면 로 이 구절 때문이었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21쪽~22쪽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218쪽


삶의 어떤 교훈도 그토록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296쪽


나는 책의 끝에 쓰인 자신을 말하는 작가의 이 말도 참 좋았다. "작가란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을 소설 위에 세우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는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모순이 아니기를 바란 적 없다. 어쩌면 인간이란 비난하며 배우고, 훔쳐보며 따라 하는 모순 가득한 존재일 수도 있다. 한때는 젊어서 세상살이가 불안했고, 살면서 탐구하며 지낸 사람들은 모두 의미 있는 모순을 지녔을 뿐이다.


흔들리는 청춘이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둠 속에 있으면 작가의 말대로 아주 천천히 이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 안진진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좋겠다. 그냥 안진진을 만나듯.


그리고 주인공 안진진을 통해 고백하듯 말하는 작가의 이 문장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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