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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신 Nov 07. 2024

가을의 연극, 회란기

새라새극장은 일산에서 가장 쓸모 있는 공연장 중의 하나다. 연극 공연은 당연하고, 연주회도 훌륭하게 치를 수 있는 곳이다. 연극 관람기를 쓰려다가 무대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나는 당연히 극장의 운영 관계자는 아니다. 그저 몇 번 이 무대에서 한국식 오카리나 연주회에 참여했던 무대 경험자일 뿐이다.


나는 연극 수업에 관심이 많은 '파주(고양) 연극교육연구회'의 회원이다.  이 모임의 마지막 행사는 연극 관람이다. 연극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 모임은 연말에 따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 관극 공연 관람 작품인 <회란기>는 작년 가을 2023년 이맘때 관람했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연출한 고선웅 연출님의 작품이다.

예매된 연극의 공연 시간 15분 전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다가 뽀글 머리의 고선웅 연출님이 빠른 걸음으로 공연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연극이 무대 위에 오를 때의 연출도 그저 또 한 명의 관객이 된다. 막상 연극이 무대 위에 오르면 배우가 그 시간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회란기는 중국 원나라 시대의 작품으로 7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다룬다. 5살 아이를 놓고 서로가 엄마라고 주장하는 장면은 마치 솔로몬의 재판이 재현되는 느낌이었다. 연극 시작 전부터 아이 엄마는 이미 눈물을 흘리며 포스터 안에서 포스터 밖의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회란기는 120분을 꽉 채운다. 역동적으로 열리는 중앙의 문과 어느 순간 재판 과정부터는 바닥의 흰색 원을 비추는 거울이 관객을 향한다. 거울에 비추인 사람의 등이 정면으로, 굴절된 모습으로 보인다. 마치 이 재판의 뒷모습에 가득한 거짓의 모습처럼 보여 관객에게 묻는 듯하다. 거울은 관객의 시선과 탄식을 얻어 진짜 엄마를 알고 있던 관객에게 정의와 진실에로의 암묵적인 동의를 끌어내려는 듯하다.


가난한 가정에서 관직을 얻지 못한 실패한 아들 대신에 기생이 된 딸의 처지는 사극의 흔한 소재다. 그 딸은 기생이 되었고, 곧 부잣집의 첩이 되었으며 아들을 낳아 본처의 시샘을 받는다는 줄거리조차 낯설지 않다. 문제는 악한 본처의 계략이 지나치다는 데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을 죽이지는 않는데, 회란기의 본처는 내연남과 함께 남편을 독살하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다섯 살 아이도 가로채려 한다. 쏜살같고 랩같이 빠른 대사, 무대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노련함 사이로 두 시간은 어느새 지났다.

회란기의 권선징악적 결말은 후련함을 준다. 어느 드라마든, 소설이든 관객이나 독자가 원하는 해피앤딩이면 그동안의 주인공의 고통은 잊을 만하다. 나는 극장 내부의 사진은 찍지 않았다. 멋진 연극 후의 여운이 좀 길게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배우답다는 말은 무엇일까? 여럿이 모여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우리는 아마추어 배우답게 한 컷을 함께 찍었으며 가을밤이 겨울에 가깝게 갈 만큼 오랫동안 연극을 얘기하다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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