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 불안해
내가 가장 최고로 여기는 가치는 ‘편안함’이다.
어쩌다 보니 불안함을 누르고 다루며 사는 삶이
되었으니까.
당장 다음주가 대학원 개강인데,
불안함에 몸부림치다 소진되어 버렸다.
요즘은 불안할 힘도 없달까. 숨만 쉬고 있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삶이 나에겐 왜 어려운 걸까
나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품고 산다.
언뜻 보기에 불안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을 숨긴다.
불안을 숨기기 위해 현실을 회피하기도 하고,
괜히 다른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두하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라도 하면 불안이 사라질까?
사실 불안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긴장을 낮추지 않고 불안한 상태 덕분에 우리는
위험한 상황을 빠르게 접하고 대처할 수 있다.
문제는 불안함이 지나친 나머지
일상생활을 지배해 버리는 상황이 아닐까?
나는 예민한 기질로 태어나 타고난 불안도가 높다.
적당히 불안했던 덕분에 눈치도 빠르고
어딜 가도 나의 역할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쩌면 불안함 덕분에 세상에서 예쁨 받고 살았다.
적당한 불안은 나를 센스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 불안의 크기가
점점 커져 다룰 수 없는 크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 하진 않지만
내가 하기로 선택한 것, 나에게 주어진 것은
어떻게든 ‘잘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했다.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일’이었다.
저 선생님은 왜 저러나 싶을 만큼 일을 열심히 했다.
불안했으니까.
공무원이 되었다고 타성에 젖은 교사가 될 까봐.
임용합격했다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는 교사일까 봐.
사실은 교사효능감이 굉장히 낮은 나는
부족한 능력이 티가 날까 봐 불안해 열심히 살았다.
알고 보니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결국 불안함이 나를 지배했고,
지금까지도 불안과 싸우는 삶을 산다.
요즘도 불안함과 매일 씨름을 하며 산다.
내 불안은 이것저것 일을 벌인다.
불안함을 해소하려고, 어디서든 유능감을 얻으려고!
예전에는 불안이 일을 벌이는 만큼
무엇이든 해내는, 어떻게든 해내는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해낼 힘이 없다. 아프니까.
해내지 못할 때마다 불안하고 서러웠다.
이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라니...
나는 왜 이렇게 부서진 걸까?
내가 고작 이것 조차 못할 만한 사람인가?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기에
불안을 어딘가에 몰두하는 것으로 해소할 수 없다.
이제 머릿속으로 불안을 다스려야 한다.
불안할 때마다, 숨기기 위해 일을 벌일 때마다
내가 왜 불안한지 거꾸로 돌이켜 고민해 본다.
결국은 자존이었다.
‘나의 가치에 대해 나 자신이 내리는 평가와 판단‘
내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해내지 않아도 된다.
잘하지 않아도 해내지 않아도 나는 가치롭다.
납득이 잘 안 되고 쉽지 않지만 주문처럼 읊조린다.
그저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해냄’보다 ‘해봄’이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도 만족하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그저 ‘해 보려고’ 집 밖을 나선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