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뭐 어때서요
내가 심각한 단계의 우울증이라는 것을 안 순간,
물론 마음으로는 '에이 내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하며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머리로는 '그만해야겠다. 일단 살고 봐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난 고민 없이 질병 휴직하는 것을 선택했다.
주치의께서도 휴직을 적극 권장하며 필요한 서류를 얼마든지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문제는 시기.
내가 질병휴직을 결심한 순간은 11월 중반이었고,
나는 그 해 맡았던 아이들이 교직생활 동안 가장
특별한 아이들이었다.
휴직 시기를 두고 고민이 이어졌다.
1. 우리 반 졸업시키고 새 학기에 맞춰 휴직할까?
vs
2. 지금 당장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정도이니 바로 휴직해버릴까?
사실 내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1번이었다.
내가 이 아이들과의 남은 시간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고, 내 손으로 졸업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위태로운 몸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대중교통 이용도 어려워 걸어서 출퇴근했고, 식사 못하고, 업무는 바빠 초과근무나 집에 일 가져가기가 일상, 난방이 빵빵한데도 혼자 오한을 느껴 패딩을 여러 겹 껴입고 지냈었다.
한마디로 출근 자체가 '기적'인 상태.
하지만
나는 이렇게 '언제 휴직할지'를 고민하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걱정은 영 다른 것이었다.
우울증으로 휴직하면 이 좁은 유아교육 바닥에 소문 퍼지는 건 한순간이다.
나중에 선생님 근무지 옮길 때 사람보다 먼저,
"그 선생님 우울증이래"라는 소문이 퍼져 낙인이
찍힌 상태로 시작해야 한다.
나이스 기록에 휴직 사유가 영원히 남을 텐데
이게 언젠가 선생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나는 20년 교직 생활하면서 정신질환으로 이렇게 당당히 휴직하겠다는 교사는 처음 본다.
우리는 유치원 교사다. 정신질환이 기록에 남는 건 선생님에게 좋을 게 없다
물론 다 걱정해서 하시는 이야기라는 거 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지만, 특히 보수적인 유아교육계에서는 정신질환을 마치 '교사로서 큰 흠집이 생기는 것'으로 보는 게 느껴졌다.
'교직', 그중에서도 '유아교육'은 마음을 써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직업이니 교육에 마음을 쓰는 만큼,
마음의 병이 생기는 건 어찌보면 놀라운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마음의 병을 참거나, 아니면 자신조차도 마음의 병이 있는지도 모르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항상 그렇지만 새삼 유아교사들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라도 당당히 밝히기로 결심했다
나는 '우울증' 걸려서 '질병휴직'한 '유치원 교사'다.
우울증 걸린 게 뭐 어때서요?
제가 우울증에 걸린 건 제가 나약해서도, 제 마음이
여려서도 아닌 살인적인 유치원 근무 때문인걸요?
꼭 상처가, 아픔이 겉으로 보여야만 아픈 건가요?
이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처절히 박살날만큼 아프다면, 아프게 만든 사람들이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부끄럽지 않다.
나는 그저 열심히 아이들을 교육해왔다.
많은 유아교사들이 마음의 병을 일찍이 발견해,
적당한 시기에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