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와 강박이는 언제나 함께.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겁쟁이다.
그것도 겁쟁이 오브 겁쟁이.
몸을 잘 못써서 내 몸을 내가 잘 다루지 못했다.
그래서 자주 넘어지고, 부딪히고, 비틀거리고,
오른쪽 발목만 깁스를 네 번이나 했을 정도다!
학창 시절, 그리고 유치원 교사가 되어서까지.
내 별명에는 '꽈당'이 절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항상 손잡이를 꼭 잡았다.
정의하자면 '안전 민감증'이었달까.
그랬던 내가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내 안전에도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
내 교실 안의 아이들을 다치지 않게 지켜야 했다.
특히 유치원 아이들은 초중고 아이들과 달리 항상
'n단분리' 상황이다. n은 우리반 아이들 인원!!!!
'안전'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단호한 교사였고,
안전에 신경을 쓰느라 난 점점 더 예민해져 갔지만,
그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내 교실에서
지금까지 병원 갈 정도로 크게 다친 아이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안전 민감증'에 불을 지피는 요인이 발생했다!!!!
우울증은 나를 점점 더 채찍질했고,
나에게 채찍질당한 나는 더 불안해졌고,
더 불안해진 나는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었다.
이 강박적인 행동은 교실에서 가장 빛났다.
아이들이 돌아다니기만 해도 바닥을 확인해 밟을만한 놀잇감은 없는지 보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활동적인 놀이를 하면
앉은뱅이 책상들을 다 구석으로 모아버렸다.
혹시 부딪힐 까 봐.
하필 코시국이 가장 극성이던 시절이라,
10분에 한 번씩 손을 씻으러 다녔다.
혹시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아이들이 걸리면?
매번 불안한 마음으로 손을 박박 씻었다.
아이들 등원 전에는 글루건을 들고 다니며
모서리 보호대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글루건을 덧칠하고 덧칠했다.
아이들 다칠까 봐.
특히 책상에 사용하지 않고 있는 '가위'가 놓여
있으면 소름이 돋았다.
책상에 떨어진 가위가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그리고 그걸 누군가가 밟게 될까 봐.
가위를 다 썼으면 가위 꽂이에 꽂아주세요
하루에도 수십 번을 이야기했지만,
교사가 말하는 대로 완벽하게 행동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정상 발달 수준이 아닐 거다.
언제나 '깜빡'하고 가위를 책상에 그냥 두는 아이,
심지어 그 가위가 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에는
애플 워치의 심박수 경고가 울렸다.
강박이 공포로 바뀌어가는 모습에 무서웠다.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얘들아 선생님은 날카로운 걸 보는 게
많이 무서워
그래서 가위가 책상이나 바닥에 있으면
너무 힘들어.
아이들에겐 선생님의 입에서 '무섭다,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선생님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
큰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가위가 무섭다는 걸' 고백하고 난 뒤엔
언제나 가위는 항상 가위 꽂이에 정리되어 있었다.
덕분에 강박이 공포로 변하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극심한 수준의 불안과 강박은 휴직하는 그날까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사실은 지금도, 줄어들었을 뿐이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사라질 수 있으려나:(
우울증의 절친한 친구,
불안이와 강박이는 건강했던 사람 한 명을
스스로 바싹 말려놓기에 충분한 힘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