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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의 말씀

- 아들 없다고 기죽지 말고 살아라 -

by 자봉


-아들 없다고 기죽지 말고 살아라 는 할머님 말씀 -

인생이란 흘러가는 물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하여 【인생은 유수와 같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인생은 너무 허무하다고 하여【인생무상】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세월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고,

어린 시절 젊은 시절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70에 가까워 온다.

그렇게도 평생 고생만 하셨던 할머님과 할아버지, 어머님,

동생, 누나들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시는 게

이게 바로 인생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일들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내 고향은 마을이라야 네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10명이 되지 않은

마을사람들이 가족처럼 더불어 사는 인심 좋고 물 좋은 심산유곡의 땅,

산촌이지만 공기가 좋아서 인지 모두가 다 장수하신다.

그런데 그토록 마음씨 좋게 살아오셨던 할머님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으셨든지 97세란 연세로 노환으로 1년 동안 고생하시면서

유료 양로원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버지가 장남이다 보니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장남으로 큰 손자로 성장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내가 결혼하던 해 1988년에 별세하셨고,

할머님은 연노하 셔서 걷지를 못해 결국에는 광주에 있는 효사랑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별세하셨지만,

손자인 나와 아내는 양로원을 수시로 방문하여 거동을 하지 못하시는 할머님을 안마도 해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왔다.

양로원을 찾아갈 때마다 기운도 없으시고, 정신이 몽롱하신 할머님은

큰 손자이고 장손인 저에게 아들도 없이 딸만 둘인 우리 부부에게 하시는 말씀이

" 아들이 없다고, 기죽지 말고, 딸도 잘 키우면 된다" 면서

힘내고 살아라 하시며 만 원짜리 지폐 2장을 손주 며느리인 내 아내 손에 꼭 쥐어 주며

눈물을 흘리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할머님께서 눈을 감으시면서 손주, 손부인 저와 제 아내 손을 잡으시고

눈물을 흘리시길래 저도 몰래 눈물을 참지 못하고 왈칵 울어 버렸다.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 년 전 일이 되어버렸으니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할머님께서는 당신의 자식인 아들과 며느리보다는

손주인 저와 아내를 더 예뻐하셨고, 증손녀인 우리 두 딸을 많이 사랑해 주셨기에

할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많은가 보다..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신 경험들을 들어보면 장남이나 장손들은 할아버지, 할머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손자들은 부모님 사랑도 많이 받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도 많이 많이 받아 성장해서도 조부모님을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좋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부터인 여섯 살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계속해서 할아버지 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고

하롯불에 불을 지펴 온기를 만들어, 옛날 옛날이야기들을 들어가며

할아버지와 함께 기나긴 밤을 지새웠으니 어찌, 할아버지 할머님에 대한

사랑을 잊으리라.

또한,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방학이라도 하게 되면, 시골 고향집에 내려가

집에서 일 소로 키우던 한 마리의 소를 몰고, 동네 앞산과 뒷산으로 가서

할아버지가 심심하실까 봐 할아버지를 따라가 소에게 풀을 뜯기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어디, 그뿐이랴!


학창 시절에 자취를 하면서 토요일이나 방학 때에 고향집에 내려와서,

할머니를 따라서 산도라지를 캐러 심산유곡의 산속으로 들어가 칡넝쿨로 감싸인

옹달샘을 찾아 목을 축여대던 어린 시절들이 그리워진다.

많은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도 할머님도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어머님마저

8년 전 추석 전에 별세하여 내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시니 이 세상

모두가 그립고 아픔이고 고이 간직하고픈 추억들이다.


이렇게, 할머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아내도 할머님을 너무 좋아하시고,

증손녀인 우리 두 딸들도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해 기자생활과 굴지의 외국계 회사에

본인 실력으로 취직해 장래가 유능하지만 내 아이들도 내 할머님과 어머님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다.

때로는, 길거리를 걷다가도 연노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님을 보노라면 생전에 우리 할머님과 할아버지,

어머님이 더욱더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세월이 흘러가도 할머님과 할아버지, 어머니가 그리워질 때면

가까운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을 찾아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분들을 위해 자원봉사라도

하면서 엄마와 할머님을 추억해 본다.


종부이고, 큰 며느리이어서 어머님과 할머님이 예뻐해 주셨던 탓인지

아내는 자주 가까운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을 찾아 할아버지 할머님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리고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오래되었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아내가 다른 어르신에게 자원봉사 하는 것보다는

내 어머님이 생전에 계실 때 안마도 해드리고 더 잘해 드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푸념과 아쉬운 욕심마저 생기곤 했다.

이제는 저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신 조부모님과 사랑하는 어머님이 사고와 고통 없는 천국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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