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익고 시원한 홍시는 기나긴 겨울밤의 할아버지의 간식이다
55년 전 나 어릴 적 고향 초가집에서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 때 가장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사랑방에는 할아버지께서 한학을 하시면서 홀로 주무시면서
할아버지의 전용 방이다
어머님께서는 종손이고 큰 이들인 내게는 항상 할아버지와 함께 밥그릇에 밥을 담아 밥상을 겸상으로
받았다
어느 집이나 대부분의 가정들이 먹고살고 힘들었기에
꽁보리밥이나 끊인 밥 아니면 밀죽이나 감자 등 구황작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종손인 나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래도 흰쌀밥을 많이 먹었다
할아버지가 화를 내시거나 기분이 언짢을 때면
어머님은 낮이나 밤에도 할아버지 방으로 나를
보냈다
사랑방은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땐 방으로 구들방이었기에 금방 뜨거웠다가 이른 새벽이
되면 방바닥이 금방 식어 차갑다
이렇다 보니 소에게 먹일 소죽을 수시로 썼고
저녁이면 항상 화로에 시뻘건 불을 모아 할아버지와
내가 잠을 자는 사랑방으로 홍시와 함께 보내졌다
방 가장자리에는 항상 화로에 불이 담겨 있어 뜨거운 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했다
12월 동짓달이 되면 항상 밤이 길기 때문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집에서는 초저녁부터 일찍 잠을
잤기에 눈을 뜨면 새벽 4시였다
4시면 밝은 캄캄하고 왜 그리도 추웠던지 이불 밖으로
나오기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한문과 한학을 하셨던
분이라 이른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그 어렵던 한문책을 읽으시면서 주문도 외우곤 하셨다
공기도 차고 방바닥에 온기도 식어 이불속에서 나오기도 싫은데 할아버지가 초롱불을 켜고 주문을
낭독하시면서 큰 손자인 내게는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억지로 가르치시니 미칠 지경이었다
한자를 제대로 못 읽거나 외우지 못하면 긴 담뱃대로
무릎이나 종아리를 한 대씩 때리실 때에는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가 싫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고충도 모르고 어머님께서는
종손인 내게 한문을 가르치시는 할아버지에게 간식으로 매일 저녁 붉고 빨간 홍시를 새벽에 출출할 때
드시도록 간식으로 보내면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한문을 외우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시원한 홍시를
새벽 간식으로 먹었던 나의 초립동 시절 열 살 때
어린 시절들이 떠 오른다
서나 가고가 옹기종기 모며 사는 초가집에서 보냈던
시절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0여 년 전의
추억이다
이제 나이가 든 탓인지 매일 새벽 서너 시에 규칙적으로
일어나면 배도 출출하고 시장기도 있어 조용히 혼자
일어나 홍시나 삶아놓은 고구마 한두 개를 먹는데
새벽에 일어나 홍시를 먹노라면 그 옛날 할아버지와
함께 사랑방에서 매일 홍시나 누룽지. 삶은 고구마를
먹었던 가난해도 행복했던 옛 추억들이 떠 오른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부모님도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동생 두 명도 내 곁을 떠나 먼 하늘나라로
가버렸지만 어릴 적 시절들과 할아버지와 함께 달콤하게 먹었던 빨간 홍시가 그리워진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