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상 글 쓰기

by 자봉


길을 걷다가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 빈의자가 있으면 앉아서 지나간 날들의 기록들을 더듬어 본다


어느덧 400여 편. 매일의 날씨와 감정, 승진의 기쁨이나 일상의 소소한 편린들이 빼곡히 적힌 그 글들은 나라는 사람의 생애를 증명하는 가장 정직한 목격자들이다.ㅇ

최근 곁에 있는 후배들은 나의 이런 기록법에 대해 조언을 건네곤 한다. 지나간 과거에 매몰되기보다 앞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인 글'을 써보라는 주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나의 반추가 어쩌면 뒷걸음질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미래라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과거라는 지반이 얼마나 단단해야 하는지를.

후배들이 말하는 미래는 어쩌면 '예측'과 '계획'의 영역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쓰는 과거는 '성찰'과 '뿌리'의 영역이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게 가지를 뻗을 수 있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 지난 세월만큼 뿌리를 깊게 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써 내려간 400개의 일상은 나를 지탱하는 뿌리이며,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는 무게중심이다.

승진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직급이 올라간 것에 대한 자랑이 아니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내가 감내했던 고독과, 함께 땀 흘렸던 동료들의 얼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겸손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일이며, 무의미하게 소모될 뻔한 '오늘'에 특별한 의미의 이름을 붙여주는 의식이다.

기록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이다. 내가 쓴 400개의 글 속에는 수많은 '과거의 나'가 살고 있다.


그들은 때로 나를 꾸짖고, 때로 나를 위로하며,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쓰는 글이 이미 충분히 미래지향적인 이유다.

누군가는 앞만 보고 달리라 하지만, 나는 가끔 멈춰 서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발자국마다 서린 사연을 읽어내고, 그것을 문장으로 옮길 때 비로소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진 사람이 된다.

비록 후배들의 눈에는 내가 옛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오늘도 묵묵히 나의 역사를 쓴다. 이 글들이 모여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나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철학이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400번의 기록이 500번, 1000번이 되는 날, 나의 숲은 더욱 울창해질 것이고 그 숲의 그늘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미래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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