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으로 본 우-러 전쟁
*들어가기 전: 이번엔 그냥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듣는다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전쟁은 크게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좁게 보면 독•소 전쟁과 유사점이 꽤 있다. 특히나 러시아군이 전쟁 초반 진격이 느렸던 이유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 때문도 있지만 2월~3월쯤에 우크라이나의 동토가 녹아내리는 가을장마(=라스푸티차) 때문도 있었다. 가을장마(=라스푸티차)는 위에서 설명했듯 얼어붙은 동토가 높은 기온으로 인해 녹아내리면서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독•소 전쟁 당시에 히틀러와 그의 장군들도 라스푸티차 때문에 군병력 이동과 물자 수송에 애를 먹어 진격이 주춤했던 전적이 있었는데 그게 21세기인 지금도 그대로 구현이 된 것이다.
거기다가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이 악물고 버텼던 모습이 수도 키이우에서 강렬히 저항했던 지금의 우크라이나군과 비슷하고, 마리우폴을 러시아군이 빈틈없이 포위해 우크라이나군 더 정확히는 아조프 연대의 사기를 꺾고, 끊임없이 공세를 감행하며 빈틈없는 포위망을 형성해 적들이 지치게끔 하여 강제로 항복해서 나오도록 하는 전략이 마치 독•소 전쟁 당시의 레닌그라드 포위전 혹은 공방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의 국제 사회의 모습도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당시의 국제 사회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이탈리아 왕국의 알바니아•에티오피아 합병,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합병, 일본 제국의 만주사변, 열하사변, 중•일 전쟁, 추축국의 국제 연맹 탈퇴, 에스파냐 내전에서의 파시스트 정권의 수장이었던 프랑코의 승리, 베를린•로마 추축 결성, 삼국방공협정 등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징조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결국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똑같았다. 2014년 크림 반도 합병을 기점으로, 2016년 러시아의 국제형사재판소 탈퇴(크림 반도 합병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가 보고서를 통해 비판하자 러시아가 국제형사재판소 탈퇴로 맞대응한 것이다.), 2014년~2022년 무려 8년 동안 진행됐던 돈바스 내전, 2022년 2월 24일 직전까지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서의 러시아군 집결 등 이런 심상치 않은 상황이 연이어 벌어졌음에도 우크라이나 당국은 물론 국제 사회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고, 형식적인 경고만 할 뿐이었다. 결국 일은 터졌고, 그제야 국제 사회와 우크라이나는 급하게 사태 수습에 나선다.
또 한 가지의 유사점은 이번 우-러 전쟁에서의 우크라이나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혹은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와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는 초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인 낙관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항전해 굴욕적인 무조건 항복을 하는 건 막았다. 이는 일본과 핀란드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당시 수많은 인명 피해와 무모한 전술(반자이 돌격과 가미카제, 가이텐 등)을 반복해 끝까지 지연전을 펼치며 저항함으로써 천황제 유지만은 지켜냈다. 핀란드의 경우 만네르하임 장군을 중심으로 ‘만네르하임 방어선‘과 핀란드의 지형•지리•기후 활용을 통해 지연전을 펼침으로써 수도 헬싱키가 함락되는 건 막았다. 그 결과 최소한의 주권과 독립은 보장받았다.
하지만 지연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경우 끝없는 지연전을 펼치며(펠렐리우 전투,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 등) 결사항전 했지만 결국 도쿄 대공습을 비롯한 무차별적인 공습, 두 차례의 원자폭탄과 소련의 참전으로 무조건 항복했고 그로 인해 모든 해외 식민지와 주권 상실 그리고 미군 통치(비록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다시 주권을 돌려받았지만)를 비롯한 민족적 굴욕(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역사적으로 외세에 의해 점령•통치당한 경험이 전무후무 했다.), 전후 경제•물자난까지 겪어야 했다. 핀란드의 경우 겨울전쟁 후 평화 협상으로 카렐리야 지역과 항코 항구를 비롯한 40%의 자국 영토를 소련에게 할양했고, 전후 피해와 복구는 오로지 핀란드 스스로가 담당해야 했다. 이후에는 소련을 두고 끝없는 안보적 딜레마와 불안에 갇혀 겉으로는 주권과 독립을 보장받은 듯 보였지만 대외 정책 수립에 있어서 반강제적으로 소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외교적 선택지가 좁아졌다. 사실상 소련의 반종속국이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이와 비슷하다. 비록 3년 6개월 간의 저항으로 러시아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건 막았지만 인구 손실, 부채 문제 그로 인한 경제난, 장기화된 전쟁으로 분열하는 여론과 정치권,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느껴야 하는 외교-안보적 불안 등은 2022년 9-11월에 있었던 하르키우•헤르손 역공세 이후 일본과 핀란드처럼 결정적 한 방 없이 지연전을 통해 버티기만 한 결과였다.(물론 이는 구조적으로 비교•분석하자면 그렇다는 취지이지 전적으로 우크라이나만의 책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이에 대한 책임은 서방이 더 크다. 국내 정치적 여건과 여론 때문에 눈치보느라 지원해야 할 적기를 전부 놓쳤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은 어떻게 보면 냉전•제1차 세계대전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자유주의 세력으로 대표되는 미국과 서방 그리고 그 우방국들과 권위주의로 대표되는 러시아와의 패권 경쟁이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냉전과 유사한 점이며(여기서 현재 러시아는 옛 소련과 같고, 미국 그리고 그 우방국은 냉전 당시의 미국과 같다고 생각하면 위의 말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두 국가 모두 인터넷, 포병, 드론을 한 데 엮어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총력전을 하고 있는 것이 동맹국과 협상국 모두 전투기•전차•잠수함•화학 무기 등의 신무기를 사용하며 총력전을 벌였던 제1차 세계대전의 모습과도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