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4일 차, 7,500Km, 로드트립을 마감하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by 에피쿠로스

샌프란의 노을과 가정식 만찬


13일 차 운전, 레이크 타호 -> 샌프란시스코, 204마일(326km), 3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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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Lake Tahoe의 날씨는 너무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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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서기 전 방문 앞에 무인 체크아웃 유의사항이 있는 QR코드가 있기에 들어가 봤다. 내용인 즉 <무인 호텔> 임에도 팁을 천연덕스럽게 요구하는 캘리포니아의 위엄. 전 날의 개고생을 기억하는 K아저씨들은 코웃음을 치며 패스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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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이라 당연히 호텔조식도 없어 근처 유일하게 오픈한 식당으로 갔다. 식사라기보다는 커피를 목적으로 간 곳인데 주인장 한 명이 혼자서 주문과 음식을 담당하고 있었다. 계란이 들어간 빵과 커피, 그리고 포테이토 스낵 하나를 먹었다. 로드트립 중 가장 열악한 아침식사였는데 가격은 <투쿰캐리>의 전통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보다 더 높았다. 캘리포니아+스키리조트+비시즌, 이 삼단콤보의 결과이고 엄연한 수요/공급의 경제법칙에 따른 가격정책이라 그러려니 했다.


출발지이자 마지막 목적지인 샌프란까지는 3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아 그 여정상 뭔가 할 것들이 필요했다. 먼저 햄버거 to do list의 마지막 과제인 <인 앤 아웃>을 점심으로 먹었다. 아침의 괴랄한 식사와 달리 캘리포니아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 준 맛있는 한 끼였다.


샌프란을 들어가기 전에 <소살리토>를 방문했다. <소살리토>는 출장 갈 때마다 주재원들이 추천하거나 아니면 같이 출장 간 MZ 직원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예쁜 카페들이 많고 산중턱의 집들과 항구에 정박된 요트 등 포토스팟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내가 소살리토를 가고자 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여행의 <기념품>으로 <티셔츠>를 사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각 도시는 물론 대학교까지 하나의 브랜드라 그 브랜드의 라운드 T나 후드 T 등이 유명하다. 냉장고 마그네틱이나 키링 등의 기념품은 이미 졸업한 50대 아저씨들이기에 한국에 돌아가도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티셔츠가 이번 로드트립의 기념품으론 적격이었다. 특히 캘리포니아 방문이 처음인 현암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예전 출장 시 여러 곳에서 티셔츠를 산 적이 있는데 내 경험으론 <소살리토>의 티셔츠 가게가 가격으로나 품질로나 최고였다. 다운타운이나 기념품 샵, 특히 공항 등에서 산 티셔츠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원단 자체가 좋지 않았다. 그에 비해 소살리토에는 티셔츠 가게가 대규모로 몇 개나 있고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품질이 상향평준화가 되어 있었다. 쇼핑을 귀찮아하는 아저씨들이지만 의무감으로 티셔츠를 골랐고 나와 현암은 맘에 드는 셔츠를 발견하여 득템 하였다.


소살리토를 나와 샌프란으로 입성하기 위해 <금문교>를 건넜다. 샌프란의 상징과도 같은 금문교를 처음 건너는 현암은 여행의 마지막날 샌프란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음에 감격했다. 현암은 금문교 건너는 장면을 꽤 길게 비디오로 찍었는데 귀국 후 이런 영상들을 유튜브 클립들로 편집하여 동행한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Dr. 구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예약해 준 샌프란 <모텔 6>에 체크인을 했다. 석헌의 집에서 멀지 않고 샌프란 해안가에 바로 인접한 좋은 위치였다. 30년 전 젊은 시절의 로드트립에서 가장 많이 묵었던 곳이 <모텔 6>여서 이번 여행 중 추억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는데 여행의 마지막 숙소로 <모텔 6>가 당첨되어 행운이었다. 비록 아침식사도 없고 가격은 샌프란이다 보니 가장 사악한 숙소였지만 마지막 하루를 보낼 곳이란 점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저녁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바를 방문했다. 석헌이 혼술도 가끔 하는 집 근처 바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 중 미국 바를 많이 갔었다. 요즘 외국인들이 한국음식문화를 체험하는 TV프로그램이 많은데 이번 여행 중 다양한 바와 그곳의 음식과 맥주, 와인을 경험한 우리들이 딱 그러했다. 관광객으로서 현지 체험을 제대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 여러 곳의 바 체험은 특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었다.


오늘 마지막 저녁식사는 석헌의 집이었다. Dr. 구는 그동안 이번 여행의 제5의 멤버이자 HQ로서 모든 일정을 진두지휘해 준 것에 모자라 저녁식사까지 몸소 마련해준다고 한 것이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 <일몰>이 시작된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바로 이동했다.


이 저녁초대는 이미 로드트립 출발 전 샌프란 식사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나와 현암은 감사의 의미로 뭔가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데 이런데 경험이 부족한 주변머리 없는 아저씨들이라 당최 마땅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았다.


샌프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를 여행 내내 고민하다가 다행히 <산타페>에서 하나 살 수 있었다. 산타페 다운타운의 자그마한 쇼핑센터는 인디언 원주민들이 직접 제작하거나 디자인한 제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는데 거기서 도톰한 <실내용 조끼>를 샀다. 물론 디자인은 DR. 구를 제일 잘 아는 석헌이 골랐다. 비루한 선물 봉다리를 들고 간 우리들을 Dr. 구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반갑게 맞아 주었다.


Dr. 구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석헌집 2층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샌프란의 <석양>을 감상했다. 난 그동안 샌프란 출장 중 석헌의 집을 세 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세 번 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늦은 밤 석헌의 집에 도착했었다. 그러다 보니 석헌의 2층 통창을 통해 태평양 바다가 멀리 보인다는데 말로만 듣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날씨까지 늘 흐려 있어 가시거리가 짧아 불빛에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었다.


아 그런데, 이번에 처음 본 석헌집 2층에서 바라본 <석양>과 그 배경인 <태평양>은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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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했던 63 빌딩은 서울의 고층빌딩 중 아름다운 뷰로 특히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 63 빌딩의 부동산 총괄임원의 말에 의하면 63 최고의 뷰는 57층 <백리향>이나 59층 <워킹온더클라우드>가 아니라 오피스 공간인 3층이나 4층이란 것이었다. 그 이유는 높은 곳에서 내려보는 뷰보다는, 3층처럼 마치 자신의 거실 소파에 앉아 시선과 평행으로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것이 시야가 더 확장되어 편안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길 듣고 3층에서 한강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들어서인지 훨씬 멋진 뷰를 느낀 경험이 있다.


석헌의 집 2층이 그랬다. 소파에 앉아 통창을 통해 같은 높이로 시선을 이어 가다 보면 저 멀리 태평양이 보였다. 하늘에선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시선의 끝엔 태평양이 보이고, 이제 몇 시간 뒤면 저 태평양 너머 한국에 돌아갈 수 있었다. Dr. 구의 저녁과 와인을 즐기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풍광이 취해 있었다.


Dr. 구의 요리는 훌륭했다. 본인이 <태국풍 아시아 요리>라고 명명한 것들이었는데 닭고기 스튜, 돼지고기 야채볶음, 소고기 볶음, 그리고 태국식 된장찌개가 나왔다. 여행 마지막날 와인과 함께 즐기는 아시아 요리는 역시 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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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칭찬은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기에 나와 현암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많이 먹었다. 혹시 어머니에게 배운 레시피냐고 물었더니 솔직한 Dr. 구는 <유튜브>라고 쿨하게 답을 했다. 그녀의 진솔함에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이 기세를 이어 그녀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Dr. 구는 얼굴도 예쁘지, 공부도 잘해서 박사지, 거기다 요리까지 잘해버리면 이건 완전히 인간계를 넘어서는 거 아냐?>

(<예쁘다>란 표현을 할 때 청자의 감정을 감안하여 영어로 pretty나 beautiful을 쓰지 않고 일부러 중국어 (piaoliang: 漂亮)이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요리를 칭찬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핵심은 요리 잘하는 것을 거드는 역할을 하는 ‘예쁘다”에 방점이 있다. 즉, 예쁘고 Ph.D인건 당연한 것이고 게다가 요리까지 잘해?라고 표현함에 있어 예쁘다는 것을 무심한 듯 툭 내뱉으며 미모를 기정사실화 하는 데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과 노소를 막론하고 여성들에 <예쁘다>라는 칭찬은 치트키다. 나의 립서비스 이후 Dr. 구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졌다. 그 표정을 보니 우리의 비루한 <산타페 조끼선물>에 대한 미안함도 조금은 사라졌다.


와인을 마시는 내내 Dr. 구는 환한 표정이었다. 취기가 조금 오른 이후엔 내게 <너의 칭찬에 기분이 좋다>라고 또 한 번 솔직한 표현을 해 주셨다. 나중에 나의 립서비스가 White Lie냐 아니냐에 대한 진실논쟁이 있긴 했으나 뭐 상대방이 만족했고 그 때문에 분위가 좋았으니 팩트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샌프란에서의 마지막 가정식 만찬을 즐겁게 마치고 나와 현암은 우버를 불러 숙소로 돌아갔다.


출국일 아침. <모텔 6>에 조식은 없었지만 우리는 그럴 줄 알고 멤피스 채담의 집에서 비장의 무기 컵라면 두 개를 챙겨 왔다. 현암과 아침해장을 마친 10시에 석헌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11시까지 렌터카를 반납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차를 처음 받을 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반납은 금방이었다. 차량의 긁힘이나 사고내역 등을 조사하지도 않고 쿨하게 차 키를 반납했다. 이로서 우리와 7,500Km를 여행한 도요타 군과도 작

별을 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고마웠어 도요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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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 공항에서 석헌과 이별을 했다. 2주 전 샌프란 공항에서 석헌을 만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었는데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두 달 뒤 서울에서 다시 만나겠지만 2주간의 동거동락이 있어서 그런지 공항에서의 이별 느낌이 좀 애틋했다.


현암과 나는 공항에서 두 시간 정도 대기 후 비행기에 탑승했다. 2주 전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에서 만났는데 인생 버킷리스트인 미국 로드트립을 마치고 다시 귀국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대한항공이 샌프란 공항을 이륙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15박 16일의 우리 미국 로드트립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