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쿠로스 Dec 11. 2024

여행 14일 차, 7,500Km, 로드트립을 마감하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샌프란의 노을과 가정식 만찬


13일 차 운전, 레이크 타호 -> 샌프란시스코, 204마일(326km), 3시간 30분

다음 날 Lake Tahoe의 날씨는 너무 화창했다. 


호텔을 나서기 전 방문 앞에 무인 체크아웃 유의사항이 있는 QR코드가 있기에 들어가 봤다. 내용인 즉 <무인 호텔> 임에도 팁을 천연덕스럽게 요구하는 캘리포니아의 위엄. 전 날의 개고생을 기억하는 K아저씨들은 코웃음을 치며 패스해 주었다.


무인이라 당연히 호텔조식도 없어 근처 유일하게 오픈한 식당으로 갔다. 식사라기보다는 커피를 목적으로 간 곳인데 주인장 한 명이 혼자서 주문과 음식을 담당하고 있었다. 계란이 들어간 빵과 커피, 그리고 포테이토 스낵 하나를 먹었다. 로드트립 중 가장 열악한 아침식사였는데 가격은 <투쿰캐리>의 전통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보다 더 높았다. 캘리포니아+스키리조트+비시즌, 이 삼단콤보의 결과이고 엄연한 수요/공급의 경제법칙에 따른 가격정책이라 그러려니 했다.


출발지이자 마지막 목적지인 샌프란까지는 3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아 그 여정상 뭔가 할 것들이 필요했다. 먼저 햄버거 to do list의 마지막 과제인 <인 앤 아웃>을 점심으로 먹었다. 아침의 괴랄한 식사와 달리 캘리포니아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 준 맛있는 한 끼였다. 


샌프란을 들어가기 전에 <소살리토>를 방문했다. <소살리토>는 출장 갈 때마다 주재원들이 추천하거나 아니면 같이 출장 간 MZ 직원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예쁜 카페들이 많고 산중턱의 집들과 항구에 정박된 요트 등 포토스팟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내가 소살리토를 가고자 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여행의 <기념품>으로 <티셔츠>를 사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각 도시는 물론 대학교까지 하나의 브랜드라 그 브랜드의 라운드 T나 후드 T 등이 유명하다. 냉장고 마그네틱이나 키링 등의 기념품은 이미 졸업한 50대 아저씨들이기에 한국에 돌아가도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티셔츠가 이번 로드트립의 기념품으론 적격이었다. 특히 캘리포니아 방문이 처음인 현암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예전 출장 시 여러 곳에서 티셔츠를 산 적이 있는데 내 경험으론 <소살리토>의 티셔츠 가게가 가격으로나 품질로나 최고였다. 다운타운이나 기념품 샵, 특히 공항 등에서 산 티셔츠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원단 자체가 좋지 않았다. 그에 비해 소살리토에는 티셔츠 가게가 대규모로 몇 개나 있고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품질이 상향평준화가 되어 있었다. 쇼핑을 귀찮아하는 아저씨들이지만 의무감으로 티셔츠를 골랐고 나와 현암은 맘에 드는 셔츠를 발견하여 득템 하였다.


소살리토를 나와 샌프란으로 입성하기 위해 <금문교>를 건넜다. 샌프란의 상징과도 같은 금문교를 처음 건너는 현암은 여행의 마지막날 샌프란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음에 감격했다. 현암은 금문교 건너는 장면을 꽤 길게 비디오로 찍었는데 귀국 후 이런 영상들을 유튜브 클립들로 편집하여 동행한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Dr. 구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예약해 준 샌프란 <모텔 6>에 체크인을 했다. 석헌의 집에서 멀지 않고 샌프란 해안가에 바로 인접한 좋은 위치였다. 30년 전 젊은 시절의 로드트립에서 가장 많이 묵었던 곳이 <모텔 6>여서 이번 여행 중 추억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는데 여행의 마지막 숙소로 <모텔 6>가 당첨되어 행운이었다. 비록 아침식사도 없고 가격은 샌프란이다 보니 가장 사악한 숙소였지만 마지막 하루를 보낼 곳이란 점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저녁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바를 방문했다. 석헌이 혼술도 가끔 하는 집 근처 바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 중 미국 바를 많이 갔었다. 요즘 외국인들이 한국음식문화를 체험하는 TV프로그램이 많은데 이번 여행 중 다양한 바와 그곳의 음식과 맥주, 와인을 경험한 우리들이 딱 그러했다. 관광객으로서 현지 체험을 제대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 여러 곳의 바 체험은 특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었다.


오늘 마지막 저녁식사는 석헌의 집이었다. Dr. 구는 그동안 이번 여행의 제5의 멤버이자 HQ로서 모든 일정을 진두지휘해 준 것에 모자라 저녁식사까지 몸소 마련해준다고 한 것이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 <일몰>이 시작된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바로 이동했다. 


이 저녁초대는 이미 로드트립 출발 전 샌프란 식사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나와 현암은 감사의 의미로 뭔가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데 이런데 경험이 부족한 주변머리 없는 아저씨들이라 당최 마땅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았다. 


샌프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를 여행 내내 고민하다가 다행히 <산타페>에서 하나 살 수 있었다. 산타페 다운타운의 자그마한 쇼핑센터는 인디언 원주민들이 직접 제작하거나 디자인한 제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는데 거기서 도톰한 <실내용 조끼>를 샀다. 물론 디자인은 DR. 구를 제일 잘 아는 석헌이 골랐다. 비루한 선물 봉다리를 들고 간 우리들을 Dr. 구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반갑게 맞아 주었다.


Dr. 구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석헌집 2층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샌프란의 <석양>을 감상했다. 난 그동안 샌프란 출장 중 석헌의 집을 세 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세 번 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늦은 밤 석헌의 집에 도착했었다. 그러다 보니 석헌의 2층 통창을 통해 태평양 바다가 멀리 보인다는데 말로만 듣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날씨까지 늘 흐려 있어 가시거리가 짧아 불빛에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었다. 


아 그런데, 이번에 처음 본 석헌집 2층에서 바라본 <석양>과 그 배경인 <태평양>은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근무했던 63 빌딩은 서울의 고층빌딩 중 아름다운 뷰로 특히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 63 빌딩의 부동산 총괄임원의 말에 의하면 63 최고의 뷰는 57층 <백리향>이나 59층 <워킹온더클라우드>가 아니라 오피스 공간인 3층이나 4층이란 것이었다. 그 이유는 높은 곳에서 내려보는 뷰보다는, 3층처럼 마치 자신의 거실 소파에 앉아 시선과 평행으로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것이 시야가 더 확장되어 편안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길 듣고 3층에서 한강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들어서인지 훨씬 멋진 뷰를 느낀 경험이 있다.


석헌의 집 2층이 그랬다. 소파에 앉아 통창을 통해 같은 높이로 시선을 이어 가다 보면 저 멀리 태평양이 보였다. 하늘에선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시선의 끝엔 태평양이 보이고, 이제 몇 시간 뒤면 저 태평양 너머 한국에 돌아갈 수 있었다. Dr. 구의 저녁과 와인을 즐기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풍광이 취해 있었다.


Dr. 구의 요리는 훌륭했다. 본인이 <태국풍 아시아 요리>라고 명명한 것들이었는데 닭고기 스튜, 돼지고기 야채볶음, 소고기 볶음, 그리고 태국식 된장찌개가 나왔다. 여행 마지막날 와인과 함께 즐기는 아시아 요리는 역시 별미였다. 


음식에 대한 칭찬은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기에 나와 현암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많이 먹었다. 혹시 어머니에게 배운 레시피냐고 물었더니 솔직한 Dr. 구는 <유튜브>라고 쿨하게 답을 했다. 그녀의 진솔함에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이 기세를 이어 그녀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Dr. 구는 얼굴도 예쁘지, 공부도 잘해서 박사지, 거기다 요리까지 잘해버리면 이건 완전히 인간계를 넘어서는 거 아냐?>

(<예쁘다>란 표현을 할 때 청자의 감정을 감안하여 영어로 pretty나 beautiful을 쓰지 않고 일부러 중국어 (piaoliang: 漂亮)이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요리를 칭찬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핵심은 요리 잘하는 것을 거드는 역할을 하는 ‘예쁘다”에 방점이 있다. 즉, 예쁘고 Ph.D인건 당연한 것이고 게다가 요리까지 잘해?라고 표현함에 있어 예쁘다는 것을 무심한 듯 툭 내뱉으며 미모를 기정사실화 하는 데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과 노소를 막론하고 여성들에 <예쁘다>라는 칭찬은 치트키다. 나의 립서비스 이후 Dr. 구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졌다. 그 표정을 보니 우리의 비루한 <산타페 조끼선물>에 대한 미안함도 조금은 사라졌다. 


와인을 마시는 내내 Dr. 구는 환한 표정이었다. 취기가 조금 오른 이후엔 내게 <너의 칭찬에 기분이 좋다>라고 또 한 번 솔직한 표현을 해 주셨다. 나중에 나의 립서비스가 White Lie냐 아니냐에 대한 진실논쟁이 있긴 했으나 뭐 상대방이 만족했고 그 때문에 분위가 좋았으니 팩트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샌프란에서의 마지막 가정식 만찬을 즐겁게 마치고 나와 현암은 우버를 불러 숙소로 돌아갔다.


출국일 아침. <모텔 6>에 조식은 없었지만 우리는 그럴 줄 알고 멤피스 채담의 집에서 비장의 무기 컵라면 두 개를 챙겨 왔다. 현암과 아침해장을 마친 10시에 석헌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11시까지 렌터카를 반납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차를 처음 받을 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반납은 금방이었다. 차량의 긁힘이나 사고내역 등을 조사하지도 않고 쿨하게 차 키를 반납했다. 이로서 우리와 7,500Km를 여행한 도요타 군과도 작

별을 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고마웠어 도요타 군!>


샌프란 공항에서 석헌과 이별을 했다. 2주 전 샌프란 공항에서 석헌을 만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었는데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두 달 뒤 서울에서 다시 만나겠지만 2주간의 동거동락이 있어서 그런지 공항에서의 이별 느낌이 좀 애틋했다.


현암과 나는 공항에서 두 시간 정도 대기 후 비행기에 탑승했다. 2주 전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에서 만났는데 인생 버킷리스트인 미국 로드트립을 마치고 다시 귀국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대한항공이 샌프란 공항을 이륙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15박 16일의 우리 미국 로드트립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