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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Jan 08. 2024

한쪽소설-선물 받으신 기프티콘이 취소되었습니다.

찌질한 증권맨

"모모야, 모모야, 이 남자 봐봐. 최근에 연락하는 남자인데 진짜 괜찮은 거 같애."

두 달 전 돌싱 카페 모임에서 만나 친해진 제시가 만나자마자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면서 말을 꺼낸다.

잔뜩 신이 난 모습이다.

휴대폰 사진을 본 나는 낯익은 모습에 얼굴 표정이 굳어진다.

"응? 이 사람... 제시야, 너 이 사람 실제로 만나봤어?"

"아니? 아직. 왜? 아는 사람이야?"

"확실한 건 아니고, 사진 더 있어?"

"어, 여기."


사진을 더 보니 확실해진다.

그 놈이다. 진짜 황당하고 찌질한 그놈.

실제로 만나지 않고도 찌질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사람.


"이야... 그놈 맞네. 이 사람, ㅇㅇ증권사 다니는 사람 아냐? 딸 둘 있고, 이혼한 지 1년 됐고, 부모님이 애들 봐주고, 뭐 저~기 산골에 별장 같은 거 있어서 주말엔 거기 가고. 맞지?"

"어~ 어~ 맞아. 와~ 똑같애. 이 사람 알아? 이 사람 돌싱 카페 다른 사람들은 모르던데?"

"모르긴! 그 카페 채팅으로 나한테 연락한 사람인데. 모임만 안 다니는 거야. 뒤에서 채팅은 겁나 하는 거 같더라. 신입 들어오면 무조건 채팅으로 말 거는 거 같던데?"

"허... 진짜? 나한테는 카페 가입만 되어있고 활동 잘 안 한다고 하더니만... 나는 그 자기야 어플로 알았거든."

"뭘로 알았든 뭔 상관이야. 돌싱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카페 활동 잘 안 하는 건 맞잖아."

"하긴 그렇네. 근데 둘이 실제로 만나봤어? 왜 잘 안 됐어?"

"실제로 만나보지도 않았어. 그전에 내가 까였는데 그 이유도 모르겠어. 지금도 어이없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주말에 카페 가입을 하고 소개글과 함께 제일 잘 나온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월요일 잔뜩 날라온 채팅들 중에 가장 정중히 말을 건 느낌 좋은 사람에게 답장을 보냈다.

바로 그 증권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직장도 거짓말 같지 않았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아내의 사치로 이혼했다고 하는 게 조금 찝찝했지만 그건 만나보고 결정하자고 보류하기로 했다.

당시 장이 좋아 증권맨이 1등 신랑감으로 꼽히던 시절이라 요즘 인기 좋지 않냐고 좀 띄워 주었더니 아주 좋아했다.

자기가 관리하는 고객들 자금이 얼마이고, 그래서 이번 인센티브가 얼마가 들어왔다고 자랑을 엄청 해댔다.

심지어 주식 종목도 찍어주기까지 했다.

나는 당연히 대단하다면서 감사하다고 우쭈쭈를 해주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수요일이 되었는데 갑자기 [스타벅스 아이스 돌체라떼 쿠폰]을 보내줬다.

시원하게 드시면서 일하라나 뭐라나.

고맙다고 이모티콘을 한가득 보냈다.

그리고 자연스레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 주말이 면접교섭일이었고 일정이 꼬여 맞는 날짜가 없었다.

면접교섭이 끝나는 일요일 저녁 8시에 시간이 나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그때는 증권맨이 다음 날 출근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아쉽지만 다음 주로 미루자고 했고, 그동안은 카톡으로 썸을 타는 줄 알았다.

목요일에는 별일 없이 일상톡을 했고, 금요일에는 내가 먼저 모닝 선톡을 한 후 조용했다.

그러고는 오후에 갑작스러운 카톡이 왔다.


[주문 취소 완료 : 증권맨 님께서 선물하신 기프티콘이 취소되었습니다. 해당 쿠폰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에엥? 이게 무슨 카톡이지?

선물한 걸 취소할 수도 있나?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참나, 내가 사용을 안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사용해 버렸으면 뭐 다시 내놓으라고 했으려나?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고 똥 밟은 셈 치고 그 남자를 잊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주말이 끝나는 일요일 저녁!

그 증권맨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허걱 ㅡㅡ 이 무슨? 시츄에이션?

뻔뻔하다.

주식을 해서 그런가...

이건 저 증권맨을 차단 안 한 내 잘못이 크다.

그냥 조용히 읽씹을 하고 차단하기를 눌렀다.


이 이야기를 제시에게 모두 해주고 난 후, 제시는 나보다 더 어이없어한다.

뭐 그런 찌질한 놈이 다 있냐고 진짜 돈 많은 거 많냐고 그래서 와이프가 도망간 거 아니냐고 온갖 추측을 해댄다.

아마 그때 커피 쿠폰 취소한 것도 주말에 모모 너 말고 다른 여자랑 약속 잡아서 취소한 걸 거라면서 합리적인 결론도 내린다.

그러다가 주말에 만난 여자랑은 볼장 다 봤거나, 아니면 실물이 별로였거나 해서 다시 너라도 만나보려고 연락한 걸 거라면서 그게 더 찌질하다고 진짜 싫다면서 온몸을 부르르 떤다.


며칠뒤 모모왈,

"나도 증권맨한테 커피 쿠폰 받았다! 그놈 이거 완전 수법이구나! 몇천원짜리 던져놓고 미안하게 만들어서 만남 잡는 거~ 우와... 암튼. 어디 내 껏도 취소하나 한 번 보자! 내가 너 안다고 메시지 보내볼게.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보자. 완전 재밌겠다."

제시는 깔깔대며 증권맨한테 카톡을 보낸다.

나도 그 찌질한 증권맨이 당황해할 생각에 고소해서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된다.

카톡 1이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뒤.


[주문 취소 완료 : 증권맨 님께서 선물하신 기프티콘이 취소되었습니다. 해당 쿠폰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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