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곧내 : 제목이 곧 내용입니다 ㅎ
지영이 아무리 불러도 정훈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침밥이 다 준비됐다고 말해도 아무 기척이 없는 게 이상하다. 정훈을 찾아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 옆에 쓰러져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급하게 119를 불러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간다.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정훈이 조금 정신을 차린다.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치고 한참 후에 나타난 담당 의사가 무심한 표정으로 결과를 전달한다. 지영과 정훈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결과다. 분명 대장암 수술 5년차 검사에서 완치판정을 받았는데, 다시 암이 위로 전이 되었다고 한다. 왜 갑자기 암이 다시 생겼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우선 정훈의 직장에 연락한다. 직장 사람들은 알아서 병가 처리를 해준다고 한다. 좋은 직장이다. 병가도 질병 휴직도 복직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공무원이라 여태껏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학교에 갔던 정훈의 딸 수연에게 전화한다. "엄마!" 하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온다.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그러냐고 재촉하는 소리에 겨우 대답한다.
"지금 병원이야. 아빠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일단은 입원해야 할 것 같아."
“......”
"오늘은 내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수연이 혼자 저녁 잘 챙겨 먹고 집에 있어. 나중에 아빠 일어나면 다시 연락할게."
"... 어디 병원에 있어?"
"해운대 백병원"
"나도 지금 가면 안 돼?"
"지금 아빠가 정신이 없어. 나중에 정신이 좀 들면 연락할게."
오고 싶어 하는 수연을 지영은 말릴 수밖에 없다. 정훈의 상태가 너무 안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이렇게 된 게 꼭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수연을 볼 자신이 없다. 자기가 더 잘 돌봐주었다면 암이 재발하지 않았을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든다. 지영은 속으로 조상님, 하나님, 부처님 등 생각나는 모든 신들을 부르며 제발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기를 빈다.
수연은 전화를 끊고 멍해진다. '어쩌지... 오늘은 학원 가지 말까. 지금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심각한 건가? 에이 설마... 아빠 다시 직장도 나가시고 머리카락도 수북이 나고 엄청 건강해지셨는데 그럴 리가 없어.' 이런저런 생각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8년 전 수연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친엄마는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암 투병이 길지는 않았다. 유방암 2기여서 다들 완쾌될 거라고 낙관적이었는데 수술 후에 뭔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다. 나중에 아빠가 대장암을 진단받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친엄마가 암 투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빨리 돌아가신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새엄마인 지영은 수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데리고 왔다. 하얀 얼굴에 긴 파마머리를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지영을 본 순간 수연은 뛸 듯이 기뻤다. 안 그래도 애들이 엄마가 왜 없냐고 물어볼 때마다 짜증이 났는데 이제 자기도 엄마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거기다 지영은 목소리도 차분하고 말투도 서울말을 써서 다른 친구들 엄마보다 훨씬 우아해 보였다. 수연은 그런 지영을 닮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