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곧내 : 제목이 곧 내용입니다 ㅎ
수연은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병원에 입원한 후로 아빠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장례식장에 놓인 아빠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워하며 소곤거린다. 어린 나이에 부모 모두를 암으로 잃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는 양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넨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앞으로 너 혼자 살려면 강해져야 한다.”
“엄마, 아빠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힘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줄 테니 언제든 연락 주렴.”
특히 필리핀으로 이민 갔던 수연의 큰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가장 이해 못 할 소리를 한다.
“이제 내가 네 아빠나 다름없다. 핏줄이 중요하지 않겠냐. 내가 잘 챙겨주겠다. 마음 강하게 먹어라.”
뒤늦게 도착한 큰아버지는 상주를 자처하며 큰소리로 장례식장을 진두지휘한다. 지금 들려오는 모든 것들은 수연에겐 그저 소음이다. 아빠는 이제 없다. 지영만이 그런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옆에 앉아 지켜준다. 그 온기만이 위안이 된다. 그래도 엄마가 있어 다행이다.
큰아버지는 동생의 장례식에 지영이 상복을 입고 앉아있는 게 못마땅하다. 마치 진짜 안주인이라도 되는 듯 구는 모양이 마뜩잖다. 특히 조카가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은 정말 보기가 싫다. 자신이 이제 보호자가 될 터인데 아무 권리도 없는 타인이 어린 조카를 어떻게 홀렸는지 조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태껏 동생을 간병하고 조카를 돌봐준 것은 고맙지만, 그것은 자신도 한국에 있었다면 가족으로서 당연히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책임감 강한 장남으로서 남겨진 가족들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은 혼자 사는 무직의 여자에게 조카를 떠넘기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수연이는 자기가 데려가 친자식처럼 잘 키울 것이다.
지영은 그런 수연이 큰아버지의 불편한 눈빛과 기색을 모두 느낀다. 하지만 이 장례식이 꼭 꿈만 같다. 당장에 손만 뻗으면 정훈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저 옆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며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웃으며 말할 것 같다. 옆에 있는 수연이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다. 정훈이 그랬던 것처럼 기계적으로 조문객들을 상대한다. 그들이 묻는 대로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대답한다. 그렇게 조금씩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장례식을 마치고 같이 집으로 돌아온 큰아버지는 통장과 도장 등 이런저런 서류들을 달라고 한다. 서류를 챙겨주는 지영의 손에서 뺐듯이 가져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급한 듯이 서류 등을 들고 나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연은 방 침대 위로 가서 쓰러진다. 지영은 뒤늦게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불을 덮어주며 생각한다.
‘앞으로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자기가 꽤 오랜 시간 이 아이의 엄마로 불렸지만, 뭔가 불안하다. 바로 그때 악몽을 꾸는 듯 수연의 잠꼬대가 들린다.
“엄마... 엄마 가지 마. 엄마는 가면 안 돼... 엄마 나 버리지 마. 흑흑...”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수연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나 아니면 이 아이가 지금 기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어.’
장례식장에서 친구가 건네줬던 변호사 명함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