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 졸업 후 4년. 내게 남은 한 가지 인생 철학

청문답:누가 물어보면 답한다.(청할 청 請, 물을 문 問, 답할 답 答)

by 리메리
*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이 49일 동안 한 일

- 1주째 : 깨달음의 기쁨(법열), 진리를 증득한 기쁨을 만끽하셨다.

- 2주째 : 가만히 앉아서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곳인 보리수나무를 응시하였다.

- 3주째 : 보리수나무 곁을 열아홉 발자국씩 오고 가면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선정에 드셨다.

- 4주째 : 보리수나무 북편에서 선정에 드셨는데 몸에서 빛을 발했다.

- 5주째 : 보리수나무 동편에 앉아 계셨는데, 한 바라문을 만났다.
바라문은 부처님께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마음이 청정한 자가 고귀합니다.'라고 하자, 그 바라문은 자리를 떠났다.
이 바라문은 부처님을 제일 처음으로 만났으나 부처님의 진실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의 사상, 가치관, 기득권, 자기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진실을 볼 수가 없었다.

- 6주째 : 폭우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부처님께서 앉아 계시던 보리수나무 아래 강가가 전부 물바다가 되어 버렸는데, 그때 무차린다 용왕인 큰 뱀이 나타나 부처님을 보호해 드렸다.

- 7주째 : 부처님께서 앉아 계시는데, 두 상인이 장사한 물건을 싣고 그 숲 속으로 지나갔다.
숲 속의 짐승이나 강도로부터 두려움을 갖고 있던 두 상인은 마침 앉아 계시던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공양을 드신 것이다.
두 사람은 공양을 올리고, 복을 빌었다.
그러나 법을 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복을 빌어서 복은 얻었지만 법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7주간, 49일 동안 부처님께서는 보리수나무 주위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옮겨가면서 법열을 즐기셨다.
그전 49일 간 자신의 깨달음을 향해서 선정을 닦았다면,
그 이후 49일 동안은 '이 기쁨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교화할 것인가?'가 하나의 과제였다.

[출처 : https://blog.naver.com/princepl/222262364017]

몇 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은 49일 동안 혼자 고요히 성취의 기쁨을 누렸다.

그동안 1명의 바라문과 2명의 상인이 지나갔는데 나였으면 그들을 붙잡고 내가 깨달은 것들을 설파하느라 바빴을 것 같다.

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인가.

혼자서 49일 동안 법열의 기쁨을 누릴 정도 아닌가.

그럼에도 부처님은 지나가는 사람이 묻는 질문에 답만 간단히 할 뿐이었다.

속성 과외랄까.

가타부터 설명 없이 바로 정답 알려주기.

그렇게 답을 듣고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바라문이나, 애초에 복만 달라고 빌은 두 상인이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눈앞에 고귀한 성인이 있었으나 알아보지 못한 그들이 무슨 잘못일까.

그냥 딱 원하는 만큼만 가져간 것일 뿐이다.

누굴 탓할 게 없다.


49일 이후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들을 사람이 있을 법한 곳을 향해 길을 떠난다.

가던 길에 뱃사공을 만나는데 부처님이 공짜로 배를 태워달라고 하니 당연히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신통을 발휘에 강을 한 번에 뛰어넘었고, 그 모습을 본 뱃사공은 엄청나게 후회한다.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이 처음으로 만난 바라문, 상인, 뱃사공은 상징성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지식인임에도 자기의 가치관, 이념, 사상에 사로잡혀 진리를 보지 못했고,
두 번째 상인들은 사업하는데 집중이 되어 있어 복은 빌지만 법을 들을 귀는 없었던 것이고,
마지막 뱃사공은 너무 가난해서, 살기 바빠서 진리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이후에도 부처님은 누가 질문에 답을 청하지 않으면 먼저 설파를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내게 정말 큰 울림을 주었다.

부처님같이 어마어마한 성인조차도 먼저 설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몰라왔다.

스스로 나를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지 않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또 사람의 말은 들을 자세가 된 사람에게만 와닿는 거니까.

그렇게 들을 자세가 된 사람조차도 자신의 수준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게 천차만별이니 부처님은 이 모든 걸 다 알고 계셔서 그러셨던 게 아닐까.


나는 이걸 듣고 난 이후부터 회사에서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후배들이 새로 입사하면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하나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질문을 하면 딱 그것에 대한 답만 하려고 한다.

물론 완전히 체득하진 못해서 자꾸만 답 말고 가타부타 부연 설명이 붙기도 하지만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애정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 것 들고 한참 고민고민하다가 말한다.

그렇게 고민해서 말해도 정작 그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라는 걸 항상 느낀다.


자식을 키울 때도 항상 명심한다.

어릴 때는 너무 물어보는 게 많아서 답해주기 힘들었는데, 중학생인 요즘은 너무 안 물어봐서 답답하다.

가르쳐주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으니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항상 살피려 노력하고 운을 뗀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그래서?", "그걸 왜 말하는데?" 등등 허탈한 시니컬한 중딩의 반응이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의 청문답을 생각한다.

내가 또 청문답을 어겼구나 하고 반성한다.


이 가르침 덕에 그래도 좀 성숙한 어른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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