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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Nov 14. 2023

한쪽소설-당당한 그녀가 몰랐던 것

법원에서도 할 말은 하자.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법정을 둘러보며 증인석에 앉았다.

근무 중 발생한 선박 충돌 사고의 증인으로 참석한 것이었다.

같이 온 팀장이 다리를 덜덜 떨며 긴장한 채 앉아있는 것과 대비되게 침착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저 신기한 경험을 한다는 듯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었다.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차례로 들어오는 세 판사를 재밌다는 듯 쳐다보는 것도 그녀 혼자였다.


판사는 사고당사자인 출항선 선장에게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 왜 그때 주의를 잘 살피지 못했습니까?

- 입항선이 있다는 관제사의 사전 정보를 들었습니까?

- 혹시 선박 조종에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선장은 죄인인 양 눈을 내리깔고 죄송하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이미 관련 내용을 서면으로 모두 제출했기에 자신이 할 일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눈이 똥그래진 채 판사와 선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느라 바빴다.

그 옆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는 비싼 몸값의 변호사들을 답답하다는 듯 째려보기도 했다.

드디어 증인 심문 차례가 왔다.

의례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오길 바란다는 듯 판사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판사가 사고 당시 관제사였던 그녀에게 질문했다.

"사고 선박을 호출하여 경고를 충분히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선박 관제를 제대로 한 것 맞습니까?"


그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며 발언을 시작했다.

"우선 제가 선박에 좀 더 주의를 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출항 선박을 선회시키느라 바빴을 선장을 그때 어떻게 호출합니까? 관제사 호출에 응답하느라 조종 명령 타이밍을 놓치면, 더 위험해지는 건 판사님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조종이 더 수월했던 입항선에는 정상 항해를 했다고 두둔하고, 왜 출항선 선장에게 더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피항 의무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판사님들께서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판사는 뭐 이런 싹수없는 여자가 있냐는 듯 쳐다보더니, 관제를 더 주의해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변론기일 절차가 끝나고 법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팀장이 말했다.

"아까는 잘 말했는데, 굳이 거기서 우리 잘못을 인정했어야 했나? 우리가 할 일을 안 한 것도 아니고 할 거 다 했잖아. 판사 저 놈들도 굳이 우리 안 불러도 되는데 불러서는 이상한 소리나 하고 말이야. 어휴... 어쨌든 그래도 속은 시원하더구먼."


그녀가 알겠다고 대충 대답하고 있는데, 그 출항선 선장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이제 내려가십니까? 아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뭐 출신이 이래서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저쪽처럼 로비할 만한 돈도 별로 없고요. 그래도 관제사님이 이렇게 알아주시니 좀 덜 억울하네요.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입항선 선장은 판사들과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였고, 출항선 선장은 전혀 연줄이 없다 보니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그녀의 발언이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길 바란다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녀는 그제서야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았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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