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와강 May 17. 2024

메멘토 모리

영화 《아무르》


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오후, 난 시네큐브에서 영화 《아무르》를 봤다. 이렇게 날짜와 요일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얼마 전 그날 일기를 봤기 때문이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제 **와 시네큐브에서 《아무르》라는 영화를 보았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느리고 섬세한 연출로 보여준 노부부의 삶. 그들의 일상엔 죽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쉽게 죽어지지 않은 비루한 노년. 보고 나서 오래도록 우울했다. ‘인생 참 길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엔 인생이 짧아 어쩔 줄 모르더니 늙으면 하릴없는 인생, 너무 길어 주체할 길이 없다. 끝을 알 수 없으니 더욱 불안하고 막막하리라.     


생각난다. 그때 영화를 본 후 동행과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둘 다 목이 메어 잘 먹지 못했었다. 우리는 숟가락을 든 채, 늙고 병들어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땐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의 베개를 눌러주자는 이상한 다짐도 했었다.      


며칠 전 다시 본 영화 《아무르  Amour》. 역시나 먹먹한 기분을 어쩔 수 없다. 그때보다 정확히 11년 5개월이나 더 늙은 나는 한층 더 가까이 죽음에 다가섰고, 그래서인가 이 리얼한 스토리가 더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무르  Amour》(2012)는 미하엘 하네케가 감독하고, 장루이 트랭티냥과 에마뉘엘 리바가 출연했다.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화는 부부인 조르주와 안느가 나란히 콘서트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아한 노년.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집에 오니 도둑이 든 것 같고, 비둘기 한 마리가 집안에 들어와 있다. 간신히 비둘기를 내쫓은 조르주.    

  

영화는 예술가였던 안느가 서서히 기억을 잃고, 언어를 잃고, 자신의 존재를 잃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믿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내게는 오지 않을 나이, 내게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죽음을 바로 내 눈앞에 들이대는 듯한 느낌. 도저히 남의 일이라고 여길 수 없는 가혹한 리얼리티에 눈가가 뜨거워진다.      


처음엔 깜박깜박 반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안느. 경동맥이 막혀 간단한 수술을 하면 된다는 말에 수술하고 퇴원했다. 실패확률은 5%. 안느는 평소처럼 책을 읽고 일상을 살아가는 듯했으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실패확률이 5%든 1%든 당사자에겐 100%다. 안느는 걷잡을 수 없이 시들어가고, 씻는 것은 물론 화장실조차 혼자 가지 못한다.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안느.      



문제는 안느뿐이 아니다. 집안에 환자가 있어본 사람들은 안다. 환자는 물론 간병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망가지고 속은 곪아 썩는다. 가족들은 간병과 병원비 때문에 다투고 지치고 멀어진다. 당뇨를 앓고 있는 늙은 조르주도 지치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 노노케어의 현실판이다. 안느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조르주 역시 버거운 현실에 왜 사는지 모른 채 부부의 삶이 진창에 나뒹군다.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네.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게 뻔하잖아.

당신 입장 같은 거 생각하기 싫어.      


어느날 안느는 아침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앨범을 보고 싶다고 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사진 속의 젊은 안느는 너무나도 푸르고 아름답다.       


인생이 참 긴 것 같아.

인생이 참 길어.     


나고 죽는 것이 어디 인간의 마음대로 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간병인에게 벌거벗은 등짝을 내보이며 목욕할 때마다 “아파 아파”를 중얼거리는 안느의 삶은 죽음보다 가혹하다. 의식을 하나둘 잃어가고, 문장을 말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외마디를 지르는 안느. 그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조르주. 아아...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어느날 조르주는 침대에 누워 있는 안느의 손을 잡고 어릴적 오래된 섬으로 여름 캠프를 갔던 얘기를 해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을 해야 하고, 먹기 싫은 최악의 음식을 먹어야 했다는 것. 음식을 다 먹지 않으면 여기서 못 나간다고 말한 선생님. 그날밤 결국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는 얘기. 매주 집에 엽서를 보낼 수 있었는데 가기 전 엄마에게 캠프가 마음에 안 들면 별을 그려넣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하던 조르주는 갑자기 안느의 얼굴에 베개를 올린 후 온몸으로 누른다.      



그날 조르주는 누구에겐가 별이 잔뜩 그려진 엽서를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도저히 나갈 수 없는 고립된 섬에 갇힌 채 안느가 죽기 전에는 헤어날 수 없는 현실이 그를 또다시 고열에 시달리게 한 걸까. 우리 모두 누군에겐가 별을 잔뜩 그려넣은 엽서를 보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리라. 앞으로 또 그런 순간들을 맞닥뜨릴 것이고... 두렵다.      


조르주는 딸에게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집안엔 드레스를 입은 채 꽃으로 둘러싸여 누워 있는 안느뿐. 난 조르주가 안느를 사랑하는 여러 방법 중,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지막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은 '아무르'. 그 선택은 안느에 대한 사랑이자, 조르주 자신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2022)에 "사랑은 용맹한 행동이다" 라는 말이 나온다. 난 조르주의 선택 역시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한 죽음을 떨치고, 아내를 죽임으로 사랑을 지킨 '용맹한 행동'이라고 보고 싶다.


믿기 힘들겠지만 집에 비둘기가 들어왔어. 이번이 벌써 두 번째야. 마당쪽 창을 통해 들어왔는데 이번엔 내가 잡았어.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더군. 근데 그냥 놔줬어.     


딸에게 남긴 편지에 비둘기 얘기가 있다. 난 콘서트를 보고 온 날, 부부의 집안에 들어온 비둘기가 죽음의 전령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엔 안느의 발병을 알리고, 두 번째는 안느의 죽음을 예고한 검은 그림자. 아무렇지도 않은 평온한 일상에 느닷없이 쳐들어온 무심한 죽음의 얼굴. 조르주는 안느와의 오래된 질긴 끈을 놓고, 일상을 벗어난 채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제 이승을 벗어난 안느는 젊음도 늙음도 없는 곳에서 평안을 찾았을까.      


내게도 늙은 부모가 있다. 구십이 넘고, 구십이 다 된 그들. 그들에게 언제 비둘기가 날아들지 두렵다.(https://brunch.co.kr/@efaed9028340417/4 참조)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그 불길한 그림자. 인간으로 태어나 생로병사를 거역할 수 없겠지만, 저물어가는 세월이 야속한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두려움은 조그맣게 시작돼요.

너무 조용해서 못 들은 척해도 될 정도로요.

하지만 소리는 점점 커져요.

아주 요란하게

더는 무시할 수 없게 되죠.


2019년, 영국에서 방영한 TV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 The End of the F***ing World》시즌 2에 나오는 말이다. 조그맣게 시작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 우리의 영혼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두려움을 떨쳐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하나! 어차피 유한한 인생,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면 정면으로 죽음을 직시하고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뿐이다.


십여 년 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동행과 ‘사랑의 베개’ 운운한 게 얼마나 철없는 말이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인생은 길고, 덧없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기에 더더욱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숨쉬는 지금,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도록, 즐기며 누리며 살아야 한다. 잘살기 위해서 오히려 우리는 수시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 사진 출처 : Daum 영화 정보

           

이전 07화 인생엔 정답이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