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의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 〈귀천〉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평소처럼 출근했다가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이사 온 후, 낯선 동네, 낯선 집에 적응하려 무진장 노력중이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곳에 스며들고 물들어가겠지...
저녁을 먹자마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버이날이라서가 아니라 요즘은 매일 통화를 해야 마음이 놓인다. 하아.. 안 받으신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알린다. 이번엔 더 무거운 쿵... 아버지는 결국 입원하셨다.
92세. 아버지는 술과 커피, 친구를 좋아하셨다. 그러나 작년부터 그 좋아하던 술을 멀리하시더니 서너 달 전부터 커피를 끊고, 이젠 밥조차 제대로 못 드신다. 일주일에 한번 찾아뵐 때마다 늙은 아버지의 몸피는 자꾸 작아져 아이가 되어간다.
생로병사.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그 당연한 과정이 너무나도 무섭고 슬프다. 내일 병원에 찾아뵈려 한다. 면회는 30분만 허용된단다. 30분이라니,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을 헤아리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동안 내가 저지른, 그 무수한 악행과 불효를 고해하고 용서받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아버지,
아직 소풍을 끝낼 시간이 아니에요.
장기자랑도 해야 하고 보물찾기도 해야 하잖아요.
92세 백발의 소년, 내 아버지!
부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조금만 더 누리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