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경험했던 큰 실패
어린 시절, 여성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면서 일하기 좋은 직업으로 교사와 약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주변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있었지만, 의사는 제가 넘기 힘든 산으로 생각했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해야 하는 교사는 제 적성과 맞지 않을 것 같았죠. 게다가 외모가 출중하거나 말주변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외모나 언변이 중요한 직업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생 때부터 약사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약학대학에 입학하면 6년 동안 공부하지만, 제가 약학대학에 들어갈 당시에는 4년제에서 6년 제로 전환되는 과도기였어요. 그래서 저는 ‘2+4년 학사제도’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요. 일반 대학에서 2년을 수료한 후, PEET 시험을 치르고 약학대학에 입학해 4년 동안 공부하는 과정이었죠.
고등학생 시절, 저는 이 과정을 거쳐 약사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과연 제 실력으로 PEET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늘 의문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엄마도 같은 걱정을 하셨죠.
중학생 때까지는 진짜 공부 실력이 드러나지 않아요. 학교 시험의 변별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써도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저 역시 그 시기까지는 스스로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실력이 진짜인지 판가름이 나더군요. 어린 시절 부족했던 독서 습관 탓에 문해력이 약했고, 비효율적인 공부 방법도 문제였습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분명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이렇게 나오는 걸까?’
8살 때 아빠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지금 제 나이에(30대 중반) 엄마는 혼자가 되셨어요. 시골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저와 동생을 키우셨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학원 운영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물론, 제가 정말 간절하게 원했다면 엄마는 없는 형편에도 재수를 지원해 주셨겠죠. 하지만 저는 재수를 한다고 성적이 오를 거라는 확신이 없었어요. 만약 성적을 올리지도 못한 채 큰돈만 쓰게 된다면, 우리 집안 형편은 더 어려워질 것이 뻔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고3 수능 성적에 맞춰 원하지 않던 학교에 입학하게 됐어요.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 속 제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고, 그 괴리 속에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입학을 결심하고, 전액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넣던 순간, 등골이 오싹하는 패배감이 밀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