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공장 투어의 즐거움
술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맥주는 즐겨하고, 특히 맥주 공장에서 막 만들어진 생맥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에 미국에 잠깐 머무를 때 살던 지역에 쿠어스(Coors) 맥주 공장이 있어서 나도 여러번 갔지만 혹여라도 손님들이 놀러오면 늘 모시고 가던 주요 관광 포인트였다. 입장료는 무료였고, 투어 마지막엔 조그마한 샘플러 3잔을 무료로 주는 배려까지.
참고로 그 쿠어스는 우리나라 카스 맥주의 오리지널이다. 쿠어스가 국내에서 라이센싱 하면서 카스로 이름 붙여졌다.
그것이 처음 맥주공장 투어였다.
두번째 맥주공장 투어는 아일랜드 기네스 공장이다.
흑맥주로 유명하고, 부드러운 거품으로, 캔 속에 거품을 내는 구슬 같은 것이 들어 있는 특징이 있는 맥주다. 투어는 사실 맥주는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내용 일색이지만 여러층을 왔다갔다하면서 꽤나 다이나믹 하다. 마지막엔 더블린이 내려다 보니는 높다란 타워에서 시내 전경을 감상하며 흑맥주를 마실 수 있다. 나름 기억에 남는 투어다.
그 다음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하이네켄 공장.
초록색 병이 매력적인 맥주다. 여전히 스토리는 뻔하지만 무언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만드는 포인트들이 있다.
여기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자전거를 타고 구르면 화면에 네덜란드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보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나의 이름이 새겨진 라벨이 붙은 하이네켄을 기념품으로 살 수 있다.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맥주. 가격은 좀 비싸지만 하이네켄을, 암스테르담을 기억할 수 있는 멋진 기념품이다.
슈티글 맥주공장
처음에는 기대가 있었다.
이전 맥주공장 투어들에서 얻은 기억들이 다시 한번 리바이벌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슈티글 맥주공장 입구까지였다.
입구에서 박물관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아.. 뭔가 정적이고 재미가 없겠다' 싶은 느낌이 물씬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맥주공장에서 마지막에 샘플러 두 잔을 마실 때까지 계속이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정말 맥주 매니아가 아니라면 굳이 시간을 할애해서 가는 것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 같은 맥주공장 투어 매니아로서도 밋밋하고 재미없는 '나열식의 박물관'이다.
슈티글 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오는 이들을 격하게 환영한다. Herzlich Willkommen! 어서 오세요.
슈티글 맥주 월드(Welt). 간판에 이벤트, 뮤지엄, 식당이 적혀 있어서 무언가 대단한 것이 기다리고 있구나 기대를 하게 만든다. 과거 맥주공장 기억의 연장이라 기대했기에.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잘츠부르크 비어 Das Salzburger Bier'라는 문구와 함께 특유의 색인 빨간색이 눈을 현란하게 할 정도의 맥주 박스들이 벽을 이루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아무도 없다. 그냥 예전에 맥주공장에서 쓰던 물건들을 가지런히 모아 놓기만 했을 뿐 너무 정적이다. 말 그대로 박물관이다. 박!물!관!
슈티글 맥주 상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병 모양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저 그것 뿐이다.
그나마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다. 차디찬 슈티글 맥주를 컵에 따르는 모습. 이것은 박물관을 위해 새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 이게 전부다. 아주 정적이고 인적도 드문 맥주 박물관. 시간에 바쁜 여행자라면 굳이 시내에서 30분 버스 타고 가야 하는 슈티글 맥주공장은 그냥 건너뛰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슈티글도 맥주 맛은 로컬 비어로서 아주 좋다. 맥주도 맥주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슈티글 라들러를 즐겨 마셨다.
여러가지 맛의 라들러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Grapefruit, 즉 자몽맛 라들러가 일품이다.
저녁에 퇴근 후에 혼밥이라도 할라치면 시내 식당처럼 라들러 한잔 곁에 두고 먹으면 그 혼밥은 더 이상 혼밥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정찬이 된다.
슈티글 맥주공장은 가지 않더라도 오스트리아 어느 마트를 가도 있는 슈티글 라들러는 꼭 마셔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