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공공기관 대리의 퇴사일지 01
내가 이 구역의 퇴사무새였던 것은 전부 회사 탓이다. 원래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신입이었는데! 회사란 구조에선 열심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2년 차에게 맡겨진 부서 관리 업무, 그리고 회의실 문을 열고 불을 켜놓고 차를 타오라던 최악의 상사. 그때부터 나는 퇴사를 다짐했다.
명분 있는 퇴사만을 기다리던 나날들. 다른 공기업에 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고 이직을 꿈꿨었다. 대학생 때 공부하던 시험도 다시 보았었다.
그렇게 이제는 전 직장이 된 회사의 거의 유일한^^ 장점인 고용안정성만을 붙잡고 때를 기다렸었는데, 때가 오지 않더라. 그래서 내가 때를 만들어버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일단 퇴사합니다.
바로 내년에 어디 있을지 무슨 일을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퇴사해보겠습니다.
원래는 3개월 더 버티다가 연말에 퇴사하려 했는데, 그러면 나의 인간성이 또 갉아먹힐 것 같았다. 지금까지 경력서에 단절이라고는 없던 인생, 이번에 공백 한 번 만들어보려 한다. 그렇게 나는 서른 번쯤 미루던 퇴사를 결심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손예진이 점심시간에 낮술을 하고 일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괜히 그게 멋있어 보이고 퇴사 전에 한 번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냅다 술을 마시기엔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직장인이었기에, 막걸리 셰이크를 마시기로 했다. 알코올 0.01%이지만 알딸딸한 기분을 내기엔 충분했다.
명함들을 파쇄기에 다르륵 갈아 넣는 걸 시작으로 짐을 정리했다. 퇴사무새였어서 짐을 차근차근 줄여왔기에, 쇼핑백 하나면 되더라. 몇년의 직장생활이 담긴 가방이 저거라니... 시원섭섭하다.
괜히 책상도 한번 쓸어보고 아련하게 업무 서적들을 쳐다도 보면서 회사를 나섰다. 비록 사직서도 처리해야 하지만, 근무는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퇴사 날짜를 확정하는 며칠 동안 잠도 못 들게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짐을 들고 버스를 타자마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각설하고 잔뜩 들뜬 갓 백수는 오늘 신나는 마음으로 혼자 떡볶이 파티를 하였다. 떡볶이 하나로 행복해지는 나의 마음, 앞으로 소중하게 여겨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