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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F Aug 08. 2022

MZ 세대도 회사 때문에 불면증 앓습니다.

29살 공공기관 대리의 퇴사일지 03

'그냥 안 자고 싶다. 이대로 시간을 돌려서 내일 아침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출근 전날 새벽녘까지 깨어있던 수많은 밤들에 말이다.


이것이 불면증이라는 걸 몰랐다. '나 되게 삶이 기대되나 보다, 열심히 살고 싶나 보다.'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던 나날들. 그러다 동이 트고 매미가 울 때까지 잠 못 드는 자신을 보며 불면증임을 인지했다. 잠에 드는 순간이, 잠을 자는 시간이, 잠에서 깨어 맞이할 상황들이 두려웠던 것이다. 내일이 오는 것이 불안해서 잠들지 못했던, 걱정들을 애써 무의식으로 접어두던, 불과 일주일 전의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90년대생이 온다, MZ 세대'  미디어에서 회자되는 말들을 들으면 조금은 슬프다. 유명한  말들과 달리, 주위의 공무원, 대기업,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친구 누구도 회사 생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용인이라는 위치, 높아만 가는 실업률, 적체되는 취업시장, 부모님의 기대. MZ 세대도 다른 세대와 같다. 저마다 어깨에 짐을 지고 살아간다.


업무는 여전히 과하고, 잘하면 잘할수록 일이 늘어난다. 분명 입사 때는 과장이 맡던 업무가 어느샌가 대리에게, 그러다 주임에게 가는 일은 흔하다. 또한, 힘희롱에 걸리지 않도록 교묘해지는 괴롭힘들. 고발이 쉽지 않은 건 MZ 세대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년이 보장된 직종에서는 평생이 달려 있기에 더욱 어렵다. 물론, 기업 문화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숲에 단풍이 들어도 아직 초록인 나무가 있듯이, 단풍이 드는 과정에서 앓는 나무들이 있듯이, 세상사도 그런 거지. 점점 합리적이고 수평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퇴사 이전의 식습관
퇴사 이후의 식습관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된 야식의 위험함. 직장인이라면 모두 야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퇴근해서 밥 먹으면 그게 야식 시간이기 때문에. 비단 시간뿐만이 아니라, 야식 메뉴도 문제다. 맵고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 특히 매운 음식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매운 음식이 많은 이유가 회사 때문은 아닐까. 매운 떡볶이, 매운 갈비찜, 마라 맛 국물. 스트레스를 풀 때는 통점을 자극해줘야 하나 보다. 심적인 아픔을 혀의 아픔으로 대체하는 거지. 사람은 한 번에 한 곳만 아프다고 하니까 꽤나 합당한 추측일 수 있다.


맵고 짠 음식이 스트레스만을 가져가면 좋으련만, 꼭 염증을 남기고 가는 것이 문제다. 퉁퉁 붓는다거나, 위가 쓰리다거나, 배달비로 통장이 너덜너덜해진다거나. 하지만 직장인들은 어리석게도 그 순간의 스트레스 풀이를 위해 기꺼이 상기 사항들을 희생시킨다. 스트레스성 위염이 있지만 회사에 지칠 때는 매운 음식을 찾는 나처럼.


퇴사를 하니, 당연하게도 시간이 많아졌다. 위장 출근을 하더라도, 점심시간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니 여유로워졌다. 천천히 먹을 수 있게 되었고, 6시 이전에 식사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자연스럽게 산뜻한 음식들이 먹고 싶었다. 샐러드, 포케, 현미밥과 구운 새송이버섯. 이렇게 간단하게 먹어도 맛을 음미할 시간이 있으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시청에서 40분을 걸어서 찾아간 북촌


엉덩이가 의자에만 붙어있던 퇴사 전과 달리, 많이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날씨도 느끼고 있다. 잘 걸어서 그런지 잠자는 시간도 점점 일러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뭉치던 어깨도 점점 이완되고 있다. 보편적인 현대인이기를 포기했기에, 현대인의 질병도 나를 떠나가려나 보다.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를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입사 4년 반 동안 얻은 병들을 떠나보내야지.


잠 잘 자는 것도 복이라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생 때 부모님이 일찍 외출하신 어느 날, 10분만 다시 자고 등교하려고 했다. 그러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에 눈을 뜨고 기말고사 1교시 중간에 들어갔다. 다행히 영어시험이어서 점수가 깎이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나에게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건 크나큰 문제였다. 이른 퇴사를 결심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1순위니까, 내가 나를 제일 아껴줄 거다. 잠도 잘 자고, 건강하게 먹고, 그렇게 살아야지. 그래서 지금의 백수 생활도 한시적인 자유겠지만, 최고로 즐겨보려고 한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떠난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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