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에 전혀 흥미가 느껴지지 않은 나는 그렇다고 해서 요가를 또 열심히 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과 노는 것에 정신 팔려 있을 때 일거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 호야로부터지 않았을까?
호야는 이전에도 러닝을 꾸준히 하며 작년 마라톤까지 출전했었던 경험자였기 때문에
올해 역시 봄과 여름 사이의 마라톤에 나가보자 하고 우리에게 제안을 했을 것이다.
살면서 러닝을 하지도 않았거니와 기껏 해봤자 잠깐 헬스장을 다닐 때 러닝머신 위에서
유튜버 심으뜸이 하는 인터벌 러닝을 틀어놓고 좀 따라 하다가
숨이 차오르면 그만두고 뭐 이런 식의 내 맘대로 러닝을 했었기에
정말 각 잡고 마라톤을 준비하는 이 러닝의 힘듦을 나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랬기에 흔쾌히 오케이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우리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면 뭔들 안 재밌을까.
우리의 급작스러운 러닝 일정은 아주 추운 겨울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이 한파 속에서 무슨 러닝이야 했지만 호야는 지금이 딱 최적의 날씨라고 우리를 꼬드겼다.
이렇게 추운 날일수록 땀이 나면 따뜻해져서 지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모를 때의 나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코웃음을 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러닝은 너무나도 날씨를 타는 운동이고 한파와 폭염 속에서는 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러닝에 미친 사람들은 날씨고 나발이고 언제든 어디서든 뛰겠지만 말이다.
털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무장을 하며 그렇게 우리는 첫 러닝을 올림픽 공원에서 하게 된다.
러닝 전에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던 나는 이 추운 날 정말 뛰어야 하나 라는 의구심을 가진 채
모두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콧물이 줄줄 나올 정도로 너무 추웠던 날이었는데 이상하게 러닝을 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그냥 시작부터 재밌었다.
러닝 입문자인 우리들을 배려해 호야는 가볍게 3키로만 뛰자고 제안했다.
올림픽 공원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딱 3키로 정도였고 러닝이 처음이었지만 나름 꾸준히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이어서인지
3키로정도는 모두 그렇게 힘든 기세를 보이지 않아 했다.
나 역시 3키로 정도 뛰어도 아무렇지 않아서 오, 러닝 좀 할 만하겠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 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금방 해산될 줄 알았던 이 소규모의 러닝 크루가
3키로에서 5키로로 5키로에서 7키로 그리고 결국에는 10키로까지
일주일에 한 번 뛰는 것에서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 만나 뛰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 이 미친 사람들이 본인들의 체력이 좀 되고 러닝에도 좀 자신감이 찼다고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바람에
그렇게까지 지구력이 높지 않은 나는 저 황새들을 따라가는 뱁새의 꼴이 되곤 했다.
그래도 하드 트레이닝을 한 덕분인지 러닝을 하고 난 후의 그 상쾌함과 아드레날린이 차오르는 느낌은
왜 러닝이 트렌드가 되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정말 뛰는 동안은 죽을 것 같고 숨이 차오르고 무릎도 아파오는 것 같아도
정신줄 꽉 잡고 그 고비를 넘기면 머릿속에 잡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목표치까지만 가보자라는 생각만 든다.
이것이 뛰고 나면 상쾌함과 성취감을 가져오는 것 같다. 러닝 명상처럼.
입김이 펄펄 나고 벌벌 떨고 추워 추워를 연발하는 날씨에서부터 시작한 우리는 꾸준히 뛰는 날을 잡아 열심히
한강이란 한강은 찾아다니며 달렸고
꾸준히 뛴 덕에 날씨가 풀려가는 봄쯤에는 7키로 정도는 불평불만 없이 뛸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물론 나는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그렇게 우리는 3달 간의 우리들의 기준 하드트레이닝 마라톤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