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잘 쓰고 싶은가요?
강렬한 무언가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도서관에 들어섰을 땐 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나오려 했으나 나의 발길은 문학과 소설 쓰기 관련 서적으로 향했고 이 두꺼운 정석 같은 책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저 커다란 'Story'라는 단어는 지금 내 가슴과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이야기 소재들을 깔끔하게 정렬시켜 줄 것 같았고 저 안에는 답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책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나는 빠르게 Story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서며 반납일 전까지 읽어버리겠다 다짐했다.
본문 중에는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가르침이 있었으니...
엔터테인먼트를 즐긴다는 것은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만족스러운 결말에 도달하게 하는 이야기의 의식에 푹 빠져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관객에게 엔터테인먼트란 어두운 방 안에 앉아서 이야기의 의미와 그 의미가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감정, 심지어 가끔씩은 그 의미가 깊어져 가면서 불러일으키는 고통스러운 감정,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이러한 다양한 감정들을 궁극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정서적인 경험을 얻기 위해 영사막 위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의식을 말한다.
기능의 상실
만약 어떤 이의 꿈이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저 <그동안 교향곡도 참 엄청나게 많이 들었지. 게다가 난 피아노도 칠 줄 알잖아... 이번 주말에 한 곡 써보지, 뭐> 하는 식으로 접근해 볼 수 있을까? 천만에. 그런 많은 수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바로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그동안 영화 참 엄청나게 많이 봤지. 괜찮은 것도 있었고 후진 것도 있었고..... 국어는 항상 A학점이었지. 이번 방학 때 한 편 써볼까...>... 많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좋은 시나리오 한 편을 써내는 것은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해보지 않는다.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작곡가들은 음표들의 수학적 순수성에 근거해 작곡을 하는 반면에 시나리오 작가들은 인간 본성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 혼돈 속으로 파고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빈약한 표현을 빌자면 뼈를 때리는 말씀이다. 내가 얼마나 모든 일들을 우습게 생각하고 나는 할 수 있을 거라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던가? 그래서 뭐라도 하나 거창하게 이름을 날렸던 일이 있었던가. 세상이 우습고 인간만사가 만만하니 그 삶의 혼돈 속으로 파고들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난 단순하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하아 정말 가야 할 길이 멀게 보이긴 한다.
초보 자가 기능적인 면에서 저지르는 실수는, 그가 접해 온 소설이나 영화, 연극들의 이야기적인 요소들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해 왔다는 데 있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자신이 여태 읽어왔고 보아온 것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어떤 유형을 모범으로 삼아 자신의 작업을 그에 일치시켜 나간다.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작가들은 이를 일컬어 본능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단순한 습과, 그것도 견고하게 한계 지워진 습관일 뿐이다.
작가는 이런 가르침을 준다 예전과는 달리 현대의 작가들은 주관으로 기울어 가치관의 커다란 혼란 속에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 분해되고 성별 간 대립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어떤 확신을 품고 갈 수 있단 말인가?라고 그래서 오늘날의 작가들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작가란 사람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 새로운 내밀한 시각을 발견해 내고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정련해 낸 다음 점점 더 불가지론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세계에 자신의 해석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쉬운 일인가?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어렵게 느껴지고 공부할게 많다는 느낌은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 이야기를 구성해 나간다는 것은 작가의 성숙도와 통찰력, 사회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본모습에 대한 지식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는 선명한 상상력과 강력한 분석적 사고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때 자기표현이라는 문제는 논쟁거리도 되지 못한다. -
감탄사의 한계를 느끼지만 아하! 그렇다.
이야기란 (Story is.) 반드시 삶의 모습을 담고 있어야 하지만 아무런 깊이나 의미가 없는 보통 삶의 단순한 복사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이야기란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의 세계가 아니다. 사소한 실제 사건들은 우리들을 진실 근처에도 데리고 가지 못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일 뿐이다. 진실이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 자체이다.
It is story. 그렇구나.
2장으로 넘어가면서 좀 더 아카데믹한 내용들이 열거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글쓰기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구조 - 사건 - 장면 - 비트 - 시퀀스 - 장 - 이야기이다. 그리고 섬세한 작품을 써내려 가기 위한 플롯의 구성에 대해 알려준다. 아크플롯, 미니플롯, 안티플롯. 이 플롯은 삼각형 형태로 구성되며 그 삼각형 아래로는 정체라는 논플롯 부분도 존재한다.
'Stro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책은 학구적이며 체계적이다. '픽사 스코리텔링'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이 허전하여 책 골목을 어슬렁 거리다 찾아낸 족보 같은 책이다. 과연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반납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직까지는 읽어낼 만하다. 과거 영화를 많이 봤었고 방송 & 미디어 학과에서 이런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면서 함께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하품이 쏟아진다. 1장을 깨우침과 함께 술술 읽었다면 2장부터는 교수님이 강의하는 강당에 앉아 있는 느낌이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렵다...
첫 째, 문학적 재능.
둘째, 이야기에 관한 재능.
문학적 재능은 아주 드문 재능이며 그렇다고 작품을 술술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하니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는 문학적 재능은 이생에서는 글렀다. 그런데, 그런데 이야기에 관한 재능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과거 나는 주변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야기꾼의 면모가 있었다. 물론 MBTI가 E에서 I로 바뀌면서 사람들 많은 곳은 기피하고 은둔을 하는 입장이라니 지금으로선 이야기에 관한 재능도 관속에 묻은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난 이 두 재능에 반기를 들고 우주의 에너지와 합작을 할까 한다. 나는 엄청난 재능으로 이야기를 써나간다. 나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한다. 난 기가 막힌 로맨스 소설을 써서 첫 작품(은 아니지만)으로 유명한 작가가 됐다. 아브라카다브라 방식의 우주의 에너지를 내 마음에 가득 담고 써볼 것이다. 물론 여기 저명한 작가들의 조언을 머리에 깊이 새겨 넣고 전문적인 마인드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며 휴머니즘으로 써보려 한다.
로버트 맥키 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책 주문 들어갑니다.
아주 오랫동안 읽을 것 같은 이 느낌, 그럼 그 동안 Stroy에 대한 고통의 시간은 계속 되어야 하는걸까?
--- 그나저나 오늘도 출사를 못 나갔다. 아니 나갈 수 없었다. 날이 더웠고 점심에 반주를 했고 그래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사진이 그래도 쓸모가 있는지 조금씩 팔리고 있어서 좀 더 찍어볼까 했는데 소주 + 홍차 진토닉으로 달리고 말았다. 하! 이게 또 일요일의 묘미 아니가? 내일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사를 나가야겠다. 이렇게라도 써놔야 나갈 것 같다. 벌써 보름째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
(지인이 브런치 본문 글씨가 너무 흐려서 읽는데 짜증이 난다고 하여 볼드체로 했다. 잘 보이십니까? 루테인이라도 사드려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