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레)
요즘 먹잇감이 괜찮지?
(거미)
그런 편이야.
이 집주인은 참 이상하지 않아?
(돈벌레)
왜, 자넬 죽이려드나?
(거미)
아니, 차라리 그게 정상이지.
이 집주인은 자네와 나를 살려두지 않나.
(돈벌레)
그거야 우리가 벌레들을 다 잡아먹으니 그런 거지.
(거미)
그렇다 쳐도 가끔 길치인 새끼들이 거실로 들어가도 죽이지 않는다네. 컵에 잡아서 다시 밖으로 내보내 주던걸.
(돈벌레)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 여주인 나 볼 때마다 자지러지게 소리 지르는 탓에 내가 고막이 다 터질 노릇이야.
같이 산지 일 년이 다 지났구먼 아직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네. 등치는 나보다 더 크면서 나처럼 발 많고 귀여운 곤충을 보고 왜 소리 지르는 거야.
(거미)
그래도 자넬 때려죽인 적은 없잖은가. 내가 보니 모기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잡아 죽이던 걸. 이 집에 모기 퇴치기가 몇 개 인지 아는가? 네 개라네. 모기 전자 파리 채는 두 개이고. 자네랑 나는 주인의 극진한 호의를 받고 있는 거라고.
(돈벌레)
그렇긴 하지. 다른 층으로 가면 잡히자마자 죽겠지. 여기서는 베란다라도 살게 해 주니 나도 고마운 맘일세.
(거미)
주인이 우릴 베란다에서 왜 살게 해 주는지 아는가?
(돈벌레)
글쎄, 모르겠네.
(거미)
여기가 이층 아닌가?
일층 화초와 나무들이 이층을 넘게 올라오잖나. 목련나무 가지가 이층까지도 손이 닿고 말일세. 다리처럼 타고 건너오는 곤충들도 꽤나 있지 아마. 그러니 베란다가 해충의 본거지가 되기 십상이지. 그래서 주인이 우리를 키우는 걸세.
(돈벌레)
아, 내가 집세를 잘 낸 보람이 있고만.
위아래서 올라오는 바퀴벌레 잡아먹어야지, 화단으로 오는 꼽등이, 개미에 모기알까지..
너무 많지 뭔가. 작년에는 결혼해서 아이들도 낳았다네. 이젠 입이 늘었으니 집세 걱정은 안 해도 된다네.
(거미)
그래서 주인이 거실에 들어간 자네 아기들을 빗자루로 살살 몰아 베란다로 데리고 왔구먼.
(돈벌레)
어쩐지 몇 놈이 자꾸 사라지더라니. 그 녀석들이 집주인을 닮아서 길치였고만. 우리 가족은 암튼 최선을 다하고 있다네. 자네는 집세를 어찌 내고 있는가?
(거미)
난 초파리나 모기를 잡지. 이 집에 어항이 세 개에 이끼와 수초를 키우네. 그러니 초파리들의 천국이지. 난 공중을 유영하는 날벌레들의 보이지 않는 감옥이지. 집주인이 의리가 있어 낮이고 밤이고 집에 들어가는 거미도 죽이지 않으니 내가 믿고 일할 수밖에.
(돈벌레)
근데 거미. 가끔 이해 안 가는 게 있다네.
하얀 털뭉치 고양이는 왜 우릴 보고 자지러져 울며 넘어지는 건가?
자기가 더 무서운 이빨을 가지고선?
(거미)
아, 이 집 고양인. 그 고양이 겁보라네.
자기 물통에 빠진 날파리도 무서워서 못 건지고 집사를 불러 건져달라는 겁쟁이 말일세.
(돈벌레)
세상 참 우습고만, 덩치는 큰데 겁쟁이인 것이 닭이 쥐에게 잡아 먹히는 행세 같구려.
(거미)
그러니 거미줄에 목을 맨다는 속담도 나왔지
않겠나.
(돈벌레)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