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조기구의 진실

탑골공원의 하루

by 이음


아침, 장기판에서 ‘탁탁’ 소리가 울렸다.
커피 김이 피어오르고, 무릎을 두드리는 인사가 오갔다.
그때 ‘건강상담사’ 명찰을 단 남자가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들어왔다.
“일본에서 막 들어온 관절 마사지기, 오늘만 무료 체험!”

정씨 할머니가 먼저 기계를 시험해 봤다.
“뜨끈하네. 시원한 것도 같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씨 할아버지가 막아섰다.
“의료기기 허가번호는 있나?”
남자는 미소를 유지했다.
“동일 기술 기반, KC 인증입니다.”
“그래…”

윤할머니가 툭 던졌다.
“공짜가 제일 비싸다더니.”

남자가 전단을 내밀자, 최영감이 QR코드를 찍어봤다.
“링크가 안 열리네.”
“서버가 불안정해서요. 대신 오늘만 반값입니다.”

이쯤에서 회장님이 나섰다.
“사업자등록증은? 요샌 우리도 이런 거 안 속아.”
남자가 접힌 서류를 꺼냈다.
주소는 을지로 오피스텔, 전화번호는 15로 시작했다.

최영감이 전화를 눌렀다.
“연결음만… 지금 11시 반인데.”
남자: “점심시간이 12시부터 2시라…”
윤할머니: “10~4 열고 점심 두 시간? 일하는 시간이 두 시간 반이네.”

박씨 할아버지: “설명서 좀 봅시다.”
작은 글씨에 ‘개봉 후 환불 불가.’
정씨 할머니: “다른 데는 7일은 환불된다던데?”
남자: “소모성 패드라 예외입니다.”
최영감: “불량 시 전액 환불, 자필로 써.”

사람들 사이에 웃음과 의심이 뒤섞였다.
회장님: “오늘만이라 했지? 그럼 내일로 미뤄도 손해 없네.”
남자: “내일은 수원, 모레는 대전…”

그때, 검은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이거 우리 며느리가 사다 준 거랑 똑같네. 하루 세 번만 돌리면 무릎이 싹 풀려.”
사람들의 표정이 흔들렸다.

남자가 곧장 붙였다.
“보셨죠? 안목 있는 며느님처럼 고르시는 겁니다. 오늘만 반값, 설치 무료!”

박씨 할아버지가 그 노인을 흘끗 봤다.
“그거 진짜 며느리가 사준 거예요?”
노인이 잠깐 웃더니, 시선을 피했다.
남자가 얼른 말을 가로챘다.
“지금 계약하시면 EMS 패드 여분도 드립니다.”

망설이던 몇 명이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계약서 구석에 ‘전액 환불’ 두 줄이 겨우 들어갔다.
사지 않은 이들은 끝까지 서류를 들여다보며 “내일로 미루자”는 쪽으로 섰다.

한 달 뒤,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전원은 켜지는데 자극이 없네.”
“패드 갈아도 똑같아.”
고객센터는 여전히 연결음뿐이었다.

박씨 할아버지가 주소로 찾아갔다. 문은 잠겨 있었고, 간판도 없었다. 우편함에는 ‘반송’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지난주에 나갔어요.”라는 관리사무소 말뿐이었다.

그날 오후, 소문이 돌았다.
“며느리 얘기하던 그 영감, 파는 놈들이랑 한통속이래.”
“어이고, 참나… 바람잡이였네.”
사람들의 어깨가 축 처졌다.

며칠 뒤, 회장님이 A4 종이를 붙였다.

〈탑골공원 판매 대응 지침〉
1. 현장 판매 구매는 ‘내일’로 미루기
2. 사업자·A/S·허가번호 직접 확인
3. 계약서에 ‘전액 환불’ 자필 삽입
4. ‘오늘만, 사은품’은 경계
5. 바람 냄새 나면 멀리
6. 의심, 또 의심

사흘 후, 다리 밑에서 똑같은 시연과 멘트를 봤다는 얘기가 돌았다. 검은 모자 노인은 여전히 “며느리”를 꺼내고 있었다.

회장님이 말했다.
“그 바람잡이 놈이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언젠간 알겠지. 자기랑 똑같이 외로운 노인들을 속이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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