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계절은 가을입니다

수필통

by 이음


가을이 오면 나는 유난히 마음이 고요해진다.
공기의 냄새가 다르고, 바람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햇살은 부드럽고, 나뭇잎은 더디게 떨어진다.
가을의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내 안의 시간도 조금은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나는 언젠가부터 계절을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곤 했다.

봄은 소망의 계절이다.
무언가가 설레고, 아직 닿지 못한 꿈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순간의 떨림이 있다.
봄이면 이유 없이 희망이 생기고,
세상이 나를 응원해 줄 것만 같다.
그때의 나는 모든 시작이 아름답다고 믿는다.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다.
모든 것이 뜨겁고, 숨이 차고, 눈부시다.
그때의 사랑은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그 불이 꺼질까 두려워
더 세게, 더 가까이 붙들려 하곤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는 사랑보다 이별을 더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의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은 많은 것을 놓을 줄 알고, 이해하게 되는 계절이다.
이제는 사랑이 꼭 뜨거워야만 진심이라 믿지 않는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마음,
멀리 있어도 변하지 않는 온도
그것이 진짜 믿음이고, 사랑이라는 걸 안다.

가을은 나에게 믿음의 계절이다.
더 이상 모든 걸 소유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면 족하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 사람의 침묵까지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익어가는 단풍잎처럼
이제는 내 마음도 서서히 단단해지고 있다.

겨울이 오면 나는 신뢰를 배우겠지.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는 자연처럼
내 마음도 다시 피어날 힘을 얻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긴 계절을 건너, 결국 나 자신을 신뢰하게 되었다”고.

지금 나의 계절은 가을이다.
이제야 사랑의 온도를 알고,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익어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낙엽이 흩날리는 공원을 걷는다.
떨어지는 잎 하나에도 세월의 숨결이 느껴지고,
그 사이로 나의 삶도 조용히 단풍처럼 물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