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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3.1/수)

좋아지고 있는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번잡한 거리를 헤매듯 마음에 여백이 하나도 없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있기도 하고 애기 중학교 입학도 있었다. 그사이 나의 애마도 중고로 보내주었다. 5일 후엔 이사도 갈 예정이다. 나는 블루를 많이 아꼈다. 블루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중고로 보내고 싶진 않았지만 애가 자꾸 아파졌다. 수리비가 비싼 차라 이젠 보내주어야 하는 연차가 되어 버렸다.


익숙하고 사랑했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매번 선택이라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존재한다. 나에겐 지금이 그런 때이다. 그런 냉혹한 현실은 겉으론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론 매우 앓는 듯하다. 요즘 눈에 띄게 긴장도가 높아지고 불안증이 심해졌다. 약을 먹는 횟수도 많아지고.. 숨도 다시 차기 시작했다.


글은 매일 쓰는데 내놓을 수 있는 글은 하나도 없다. 글은 쓰는 이의 거울 같아서.. 마음이 너무 신랄하게 드러나 있다. 자극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어서 올릴 수 없는 글만 쌓여 있다. 다 정성스러운 쓰레기가 될 테다. 나는 버려지는 글도 다 자식 같고 아깝다.


헤어지기 싫은 것들이 참 많았다. 인생은 매번 헤어짐의 연속인 것을. 짐을 정리하면서도 물건에 들여놓은 사념을 끊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뭔 추억이 그리 많은지.. 버릴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견적 받은 이삿짐이 3.5t이라고 했는데 난 그것도 너무 많아 보였다. 2t이면 사람 사는데 필요한 건 다 있지 않을까. 놓지 못하는 내 마음이 미련하고 안타깝다.


이 시기는 나의 인생에 지나가는 소나기리라.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다시 해가 쨍쨍 뜨는 날이 오겠지.


다시 해가 뜨면 이불 빨래도 하고, 수건도 빨아서 빨랫줄에 척척 널어야겠다. 바람에 휘날리는 빨래가 얼마나 후련한지 모른다.


가만히 보면 삶도 빨래 같다. 살다 보면 삶의 때가 타는 날이 온다. 그러면 가만히 불려 다시 빨면 된다. 탁탁 털어 말리면 우린 또 조금 살만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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