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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Oct 01. 2021

산골의 여름: 밤손님 맞이

마이 그린 멜로디

밤손님이라고 하니 도둑 든 줄로 오해 살 수 있겠지만, 불청객이 아니라 반가운 손님이다. 아니 손님들이다.


장마가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고개를 들이미, 별 손님 찾아온다. 


고개를 들면 밤하늘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우리 집이 등고선 지도 상 산골 한가운데에 있서 그런가 보다. 곳은 천문대 못지않은 별 관측소가 된다.


별 헤는 밤이다.


자, 본격적으로 별을 헤어보자. 별 보기 전 루틴이 있다. 먼저 마당을 과하게 밝히고 있는 전등을 모두 끈다. 이럴 때 태양광 등은 명백한 방해꾼이다. 끌 수도 없다. 방해꾼을 뒤로하고 칠흑 같은 어둠의 모자를 쓰고 혼자만의 공기를 느껴본다.

 

이때 잠깐 어둠은 내 눈을 덮고, 귀와 피부를 간지럽힌다. 귓가에 가득 차는 찌르르 매미소리,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가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듯하다.  


드문드문 어둠과 조도가 낮은 불빛이 섞인 마당에서 한껏 기지개를 켜니 잠을 잊은 산새와 개구리 소리, 귀뚜라미 소리가 몰려왔다. 더위가 한창인 8월 초여도 산골의 밤은 여름을 비껴간다. 상쾌한 풀향기가 바람에 몸을 싣고 땀내를 덜어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에 적응한 눈앞에 은하수가 폭발한다. 멀리서 반짝이던 별들이 바로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느낌이다. 은하수 골짜기까지 보이는 그 광경은 이곳의 하늘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려준다.


어둠 속에서 쏟아질 듯 한 줄로 무리 지어 반짝이는 은하수는 압권이다. 은하수를 실제로 눈으로 본 사람들만 별빛을 왜 물이라고 칭했는지 알 수 있다.


시냇물 흐르듯 별이 흐른다. 달빛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빛을 내기도 하고 내키는 대로 반짝이며 별이 흐른다. 눈앞에 시선을 앞 도하나 과하지 않게 빛나는 별들이 떠 있다. 순간, 시간이 정지한다.


정지했던 순간의 버튼을 누르는 이가 있다. 별똥별이다. 별 무리 중 몇몇순간의 섬광을 내고 길을 잃어버린다. 눈이 그 찰나를 쫓는다.


어김없이 속으로 소원을 빈다. 로또를 사는 마음이나 같은 걸까. 소원을 빌며 희망에게 인사를 건네는 건 인간의 정신적 건강에 대한 투자이다. 크기는 상관없다. 꿈과 희망에 등을 지는 순간, 마음이 우울함과 그늘에 조금씩 길을 내주는 듯하다.  희망의 반대가 우울은 아닐 수 있지만 희망이 치료제임은 맞다. 적어도 내겐 그러했다.


이쯤에서 산골의 밤, 또 다른 비밀스러운 손님이 잊을만하면 찾아온다. 꼬랑지에 작은 등불을 달고 다니는 반딧불이가 바로 그 손님이다.


몇 년 전, 잠시 서울에서 이곳으로 내려와 공부를 했을 때였다. 새벽에 공부를 하느라 깨어있다가 스트레칭을 위해 잠시 밖으로 향했다. 문을 여니 코 골며 자던 반려견들이 실눈을 뜨고 이내 다시 꿈나라로 가버렸다.


조금 컸다고 안기는 맛이 없어진 놈들이다. 이 놈들을 뒤로한 채 불 하나 켜지 않은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제야 한놈이 따라와서 꼬리를 흔든다.


그렇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멍하니 쏟아지는 별꽃들을 보고 있노라니 소리도 없이 뭐가 저쪽에서 반짝인다. 귀여운 손님이 왔다.


반딧불이는 실제로 밝은 빛 아래서 보면 웬 작은 벌 비슷한 벌레가 꽁지에 노란빛 도는 동그란 구슬을 달고 다니는 모습니다. 반딧불이가 어둠 속을 날아다닐 때, 어둠을 걷으면서 빛을 뿌리고 다니는 모습이란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 실제로 반딧불이를 목격했다. 벌떡 일어나서 신이나 쫓아다녔다. 강아지들도 벌떡 일어났다. 물론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다시 이내 잠을 청했다. 반딧불이를 잡으려 한 건 아니지만 이놈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어둠이 들어오는 것이 마냥 아쉬워서 쫓아다녔다. 하얀 연기를 뿜고 다니는 소독차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아이 때처럼 말이다.


그렇게 반가운 손님과 새벽에 달밤의 체조를 하고 나면 다시 적막과 고요가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물론 1분도 안되어서 찌르르 대는 귀뚜라미, 개굴대는 개구리, 이름 모를 산새까지 합창하고 난리이다.


더위를 비껴간 산골에 신이 난 손님들이 이렇게 찾아다. 한 시도 쉴 새 없이 손님맞이에 바쁘다.

이렇게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산골의 밤은 여름이 비껴간다.


누군가 도시 한가운데서 여름 더위와 습도에 지쳤다면, 산골의 밤을 찾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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