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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Oct 14. 2021

시골에서 한 달 살아보기

마이 그린 멜로디

언젠가부터 시골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다. 나이가 들면 은퇴해서 고향으로,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는 중년층만이 아니다. Y세대를 지나 Z세대에 이른 젊은이들도 이런 삶의 방식을 희망하고 있다.


어찌나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지 You only live once! 의 줄임말(YOLO)이 익숙해질 때쯤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라는 줄임말이 등장했다. 이러한 세태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젊은이들의 좌절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시대에 강제로 정지된 경제활동으로 전 세계 정부는 열심히 돈을 풀었고, 갈 곳을 잃은 돈들이 모여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띠었다. 너무 올라버린 주식과 부동산 가격 덕에  '벼락 거지'와 '파이어' 족도 생겨났다.


문제는 이런 세태에서 혜택을 받더라도 젊은 세대보단 경제활동을 먼저 시작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30대 중후반 이상의 사람들이 대부분 수혜자가 된다는 점이다. 막 경제활동을 시작한 청년층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좌절로 이어진다.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임금을 모아서는 서울에 집 한 채 사기 어렵다. 소위 '금수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젊은이들의 좌절은 기성세대의 저축하여 미래에 투자하는 삶의 방식을 미래보다는 현재에 조금 더 집중하는 형태로 변화시켰다.


불투명한 미래는 현재의 소중함을 돋보이게 했다. 이러한 배경 속 현재에 집중하면서 사는 한 가지 방식으로 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교외에서 살아보는 방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골이 주는 첫인상은 자연에서 느리게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란도란 바람을 벗 삼아 풀잎들의 노랫소리를 감상하는 그런 생활에 대한 동경이 사골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상상하는 방식으로 시골에서 베짱이로 한 달을 살 수는 있다. 시골에서의 생활이 꼭 귀농이나 귀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니.


귀촌을 미리 경험해보는 의미에서  한 달 동안 시골에서 살아보기를 하는 경우에는 마냥 베짱이로만 있을 순 없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생활과 자신과의 궁합(?)을 보기 위해 대답해야 할 질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 "텃세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를 잘 보아야 한다. 텃세는 사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인간이 존재하는 어느 곳이나 함께 한다. 기득권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고, 신입을 배척 혹은 이용하려는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새로운 것에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을 경계하는 촌스러운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는바, 휴머니즘에 입각한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면 투쟁도 먹힐 때가 있다. 이 동네에서 유명한 센(?) 아줌마가 계신데, 우리 집보다 몇 년 후에 이사를 오셨다. 그 집 앞 공용도로를 무단으로 점유하는 옆집에게 몇 번 항의하다가 사이가 나빠져서, 그들이 하는 톱밥 공장 사업의 소음과 매연으로 소송 직전까지 갈뻔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그 아줌마가 군청으로 들어가서 고위 공무원 앞에서 드러누우시면서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시고, 설득당한 공무원들이 두 집 사이에 중재를 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그리고 비가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동네가 떠나가라 싸우기도 했던 그 집과 그 옆집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참된 이웃이 되었다. 물론, 부작용은 있다. 동네에서 아무도 안 건드린다.


혹은 앞서 말한 너른 마음으로, 마을의 문화를 이해하고, 이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는 방법이 있다. 이사를 오거나 가게를 새로 오픈하면, 이장을 한번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이장이 앞장서서 동네 사람들에게 가게를 안 좋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당황스럽지만 실제로 본 경우이다. 그까짓 밥 한 번으로 향후 시골 생활이 편해진다면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두 번째 질문. "부지런한 인간형입니까?"


봄부터 시작해보면, 겨우내 쌓인 눈이 녹고, 마음을 살랑살랑 설레게 하는 연둣빛 새싹들이 온 천지에 솟는다. 잡초의 새싹도 예외 없다. 싱그러운 이슬을 머금은 잡초이지만 이를 봄에 제대로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해 여름은 허리만 한 잡초에 둘러싸여서 어딘가에 길을 잃은 뱀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놓다. 집 주변의 풀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것이 여러모로 좋다.

 

여름은 벌레의 계절이다. 모기 혹은 진드기와의 사투가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익숙해진다면 혹은 애초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들도 생명이라고 여기며 공존을 모색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눈치를 줘도 끈질긴 모기 같은 경우에는 모기향을 피우고, 모기기피제를 뿌리는 수고는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 피부마다 다르겠지만 가림막이 없다면 선크림과 챙이 넓은 모자, 팔 토시 등은 농사일을 할 때 필수로 챙겨야 한다. 어촌에 간다면 물때를 맞추느라 새벽을 친구 삼고 잠을 멀리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귀촌한다고 해서 모두가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텃밭을 기르는 꿈을 꾸고 있다면 집에서 기르던 화초를 죽인 횟수를 세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곳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물 주는 시간과 잡초를 뽑아줄 시간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수확의 계절인 만큼 심을 때도 힘들었던 모종들이 어느새 내 키만큼 자라서 토마토를 매달고, 가지를 매달고, 옥수수를 옆구리에 끼고 있다. 아마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고구마를 캐느라 허리가 아파서 초반엔 잠들기 힘들 수도 있다. 물론 이건 하기 나름이다.


겨울에는, 특히 강원도의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해보다도 일찍 일어나서 눈을 쓸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리 집처럼 화목 보일러를 땐다면 보일러가 꺼지지 않도록 새벽에 일어나서 불을 확인하고 땔감을 넣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소소한 지런함이 매 순간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꺼이 할 의지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막상 오면 다 하게 되어있다. 나의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누군가의 시골행이 좌절되는 것을 도울 수도 있지만, 아파트를 떠나는 순간, 그 누군가의 팔과 다리는 보다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질문. "삶의 느린 속도에 인내심을 가질 수 있습니까?"


대체적으로 우리가 시골이라고 하면 뭐가 없다. 주변에도 뭐가 없고, 버스 노선도 몇 개 없고, 하루에 다니는 버스도 몇 개 없다. 사람도 몇 명 없다. 공무원의 수도 적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삶 자체가 느리게 흘러간다. 행정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느릴 확률이 높다. 누군가에게는 그 느림이 불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불편한 진실들은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다. 그리고 나의 경험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다. 어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불편함이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일단 뭐가 많아서 상념에 잠기는 것이 여간 힘든 도시생활을 벗어난다는 데에 귀촌의 가치가 있었다.


물론 누군가에겐 도시의 삶이 더 잘 맞기도 한다. 깨끗하고 편리하고 슬세권, 붕세권 등 많은 인프라와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도시이다. 아이를 키우기에도 좋다. 교육적인 환경은 도시가 좋다. 물론 교육도 초등 이후의 중, 고등 교육을 봤을 때 그러하다.


요즘은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아도 된다. 급행열차 및 고속도로가 놓여서 도시 간 교통이 편리해졌다. 제2 양양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길이 1시간가량 단축되었고, 그전에 강릉까지 ktx가 놓이면서 2시간 정도면 서울에서 강릉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무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실제로 요즘 서울과 강원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도 늘었다.


연예인들도 제주도에 세컨드 하우스를 갖고 있거나 아예 정착하는 사람들도 많다.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시골에 와서 쉼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경우에 도시와 시골 생활의 장점을 다 누릴 수도 있고, 각 장소의 단점을 상쇄할 수도 있다. 몸은 조금 고생스럽지만.


이러저러한 선택지가 많아지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은퇴 이전에도 귀촌을 희망하고 있다. 일단 짐을 싸면 도착 후에 짐을 풀 용기가 날 것이다.


당장 낯선 시골에서의 삶을 선택해라.라고 강요받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결정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시골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추천한다.


수평선 너머에서 붉은 일출이 담긴 사진 한 장에 반해서도 괜찮고, 언젠가 캠핑을 하면서 느꼈던 청량한 산 공기가 그리워서도 괜찮다.


시작이야 어떠하든, 우리의 삶의 형태는 원하는 바를 우리의 의지로 선택하는 형태로 굴러가는 것이 마땅하고, 그 끝은 선택의 결과물이다. 예상하는 방향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내가 쓴 이 글을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갔다면 이미 그 의지로 시골에서 한 달 살아볼 준비는 끝났다.


도시의 생활에 지쳤다면, 혹은 현재 지친 마음으로 어깨가 무겁다면, 그 짐을 내려놓을 시간을 찾을 때이다.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래야 후회가 없을 터. 지금도 시골의 작은 방 한 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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