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삼시 세 끼란 프로그램에서 슬로 푸드를 먹는 모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침이 고인다. 이렇게 보고 있노라면 아는 맛이 더 무섭다.
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를 따먹으면 그 아삭함이란. 어딘지도 모르는 저 먼 밭에서부터 돌아 돌아 가게에 놓인 오이를 사먹을 때와는 다른 싱싱함을 입에서는 아삭함으로, 혀로는 단물로 느낄 수 있다. 코로는 향긋함까지.
딱 알맞게 익은 수확의 시기에 똑똑 끊어 따먹는 토마토는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하게 부서질 것 같은 식감에 달달함까지 더해져 손이 가는 토마토깡이다.
적당히 독이 오른 청양고추를 꼭지에서 막 따 가지고 9년 묵은 쌈장에 찍어 먹으면 그것 하나만 가지고 밥 한 공기는 뚝딱할 만큼 꿀이다. 다디달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공짜는 아니다. 입에 들어갈 무언가를 자연에서 얻어내는 일은 돈 주고 산 밀키트로 요리하는 것과 다르다.
무농약에, 무공해로 손수 지은 작물과 우아하게 차린 밥상 위에서 매일 아침 조우하는 로망을 가슴에 한 움큼 담고 이곳에 왔다면 실망을 피할 수 없다. 이쯤에서 농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몇 가지를 고려해 봐야 한다.
우선, 육체노동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가.
주말 농장처럼 작은 규모로 텃밭을 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엄청난 부지런함을 요하는 육체노동이 기다린다. 봄에 시기를 맞춰서 작물들의 모종을 심을 때 하루정일 펴지 못하는 허리 통증, 같은 자세로 모종 심는 행동을 반복할 때 쓰는 어깨 통증 등 신체의 버라어티 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삼시 세 끼에서 보듯 그 노동의 강도는 힘들게 보이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 힘들다.
나의 경우는, 놀고 있는 밭을 그냥 보지 못하는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농사를 지으실 때 도울 수밖에 없었다. 농부도 아니면서 농부의 혼에 빙의가 되신 양, 농사가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자투리 땅에도 어찌나 열심히 농사를 지으시는지.
산으로 둘러싸인 집 밭의 모양이 네모 반듯하지가 않다. 사다리꼴이므로 세모 모양의 땅이 생기는데 이곳에는 글쎄 가운데를 섬처럼 다져 올려서 굳이 거기에 방울토마토를 심으신다.
이미 모종 50개는 옆쪽 밭에 다 심어져 있다. 이런 농부의 혼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굽어가는 허리에, 검은흙이 잔뜩 낀 손톱 위로는 굳은살이 베긴 손에 주름만 느는 듯하여 차마 지나치기가 힘들다.
많이 심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추수할 때쯤 보면 어디 하나 노는 땅이 없다. 그래도 잔근육이 생기는지 할수록 힘은 덜 든다. 요령도 붙어서 농사일이 재밌기도 하다. 엄마에겐 비밀이다.
또, 무농약의 실현 가능성.
병충해를 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남에게 팔기 위한 상품성 있는 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려면 일단 잡초를 제거해주어야 한다. 제초제를 사용할 수도 있고, 잡초를 하나하나 손으로 뽑을 수도 있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제초제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최소 한번 정도는 살충제를 뿌려야 조금 덜 구멍이 뚫린 이파리가 있는 식물을 먹을 수 있다. 아예 한 번도 살충제를 뿌리지 않고는 무,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같은 이파리 작물들은 수확할 때쯤 먹을 게 남아 있지 않다. 죽 쒀서 벌레에게 주는 꼴이다.
고추 농사의 경우 특히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빨간 고추를 수확하려면, 고추는 유난히 병충해에 약해서 탄저 같은 병이 걸리기 전에 최소 한, 두 번은 농약을 뿌려야 한다. 파는 것은 말도 못 하게 뿌릴 테니 그나마 좀 적게 뿌리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 빨갛게 독이 오르기 전에 따 먹는 고추는 자라는 초반에는 약을 안 치고도 먹을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나면 마트에 가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고 매끈한 모양의 채소들을 사는 것이 영 찝찝하다. 귀촌을 하고 텃밭을 키울 때 처음 몇 년은 무농약으로 버티는(?) 분들이 많은데 결국 그들도 녹다운되어 어느 정도 농약을 이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농사를 지을만하다 싶긴 하다. 다만, 잡초 제거와 병충해에 맞서려는 용기와 기꺼이 내 노동력을 바치겠다는 의지는 선결조건이다. 그러한 의지를 가졌다면 이미 반은 농부이다.
내 경우가 선결조건에 대한 진중한 고려 없이 강제로 농사를 시작당한 경우이다. 그냥 부모님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도왔고 그것이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였다. 물론, 덕분에 밭에서 갓 수확한 아삭아삭한 오이, 토마토, 고추의 맛을 보고는 채소의 진짜 맛을 알아버렸지만. 그래서 어김없이 장화를 신고, 낫을 드는 엄마의 뒤를 따라서 밭으로 향한다. 물론, 반은 엄마의 성화를 못 이겨서지만.
싱싱하고 건강한 밥상의 재료들을 수확하는 것이 땀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입의 즐거움만을 위해서라기보다, 움직임으로써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보다 건강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누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신성한 노동과 자신의 영혼이 공명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개인차가 있으니 주말 농장이라도 가서 체험을 해본 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떨까.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것처럼 남이 지어주는 농사가 제일인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