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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Oct 14. 2021

농사의 세계: 1. 그 민낯

마이 그린 멜로디

몇 년 전부터 삼시 세 끼란 프로그램에서 슬로 푸드를 먹는 모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침이 고인다. 이렇게 보고 있노라면 아는 맛이 더 무섭다.


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를 아삭함이란. 어딘지 모르는 저 먼 밭에서부터 돌아 돌아 가게에 놓인 오이먹을 때와는 다른 싱싱함을 입에서는 아삭함으로, 혀로는 단물로 느낄 수 있다. 코로는 향긋함지.


딱 알맞게 익은 수확의 시기에 똑똑 끊어 따먹는 토마토는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하게 부서질 것 같은 식감에 달달함까지 더해져 손이 가는 토마토깡이다.


적당히 독이 오른 청양고추를 꼭지에서 막 따 가지고 9년 묵은 쌈장에 찍어 먹으면 그것 하나만 가지고 밥 한 공기는 뚝딱할 만큼 꿀이다. 다디달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공짜는 아니다. 입에 들어갈 무언가를 자연에서 얻어내는 일은 돈 주고 산 밀키트로 요리하는 것과 다르다.


농약, 무공해로 손수 지은 작물과 우아하게 차린 밥상 위에서 매일 아침 조우하는 로망을 가슴에 한 움큼 담고 이곳에 왔다면 실망을 피할 수 없다. 이쯤에서 농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몇 가지를 고려해 봐야 한다.


우선, 육체노동의 무게 견딜 수 있는가.


주말 농장처럼 작은 규모로 텃밭을 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엄청난 부지런함을 요하는 육체노동이 기다린다. 봄에 시기를 맞춰서 작물들의 모종을 심을 때 하루정일 펴지 못하는 허 통증, 같은 자세로 모종 심는 행동을 반복할 때 쓰는 어깨 통증 등 신체의 버라어티 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삼시 세 끼에서 보듯 그 노동의 강도는 힘들게 보이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 힘들다.


나의 경우는, 놀고 있는 밭을 그냥 보지 못하는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농사를 지으실 때 도울 수밖에 없었다. 농부도 아니면서 농부의 혼에 빙의가 되신 양, 농사가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자투리 땅에도 어찌나 열심히 농사를 지으시는지.


산으로 둘러싸인 집 밭의 모양이 네모 반듯하지가 않다. 사다리꼴이므로 세모 모양의 땅이 생기는데 이곳에는 글쎄 가운데를 섬처럼 다져 올려서 굳이 거기에 방울토마토를 심으신다.


이미 모종 50개는 옆쪽 밭에 다 심어져 있다. 이런 농부의 혼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굽어가는 허리에, 검은흙이 잔뜩 낀 손톱 위로는 굳은살이 베긴 손에 주름만 느는 듯하여 차마 지나치기가 힘들다.


많이 심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추수할 때쯤 보면 어디 하나 노는 땅이 없다. 그래도 잔근육이 생기는지 할수록 힘은 덜 든다. 요령도 붙어서 농사일이 재밌기도 하다. 엄마에겐 비밀이다.


또, 무농약의 실현 가능성. 


병충해를 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남에게 팔기 위한 상품성 있는 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려면 일단 잡초를 제거해주어야 한다. 제초제를 사용할 수도 있고, 잡초를 하나하나 손으로 뽑을 수도 있. 선택의 기로에서 제초제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최소 한번 정도는 살충제를 뿌려야 조금 덜 구멍이 뚫린 이파리가 있는 식물을 먹을 수 있다. 아예 한 번도 살충제를 뿌리지 않고는 무,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같은 이파리 작물들은 수확할 때쯤 먹을 게 남아 있지 않다. 죽 쒀서 벌레에게 주는 꼴이다.


고추 농사의 경우 특히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빨간 고추를 수확하려면, 고추는 유난히 병충해에 약해서 탄저 같은 병이 걸리기 전에 최소 한, 두 번은 농약을 뿌려야 한다. 파는 것은 말도 못 하게 뿌릴 테니 그나마 좀 적게 뿌리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 빨갛게 독이 오르기 전에 따 먹는 고추는 자라는 초반에는 약을 안 고도 먹을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나면 마트에 가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고 매끈한 모양의 채소들을 사는 것이 영 찝찝하다. 귀촌을 하고 텃밭을 키울 때 처음 몇 년은 무농약으로 버티는(?) 분들이 많은데 결국 그들도 녹다운되어 어느 정도 농약을 이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농사를 지을만하다 싶긴 하다. 다만, 잡초 제거와 병충해에 맞서려는 용기와 기꺼이 내 노동력을 바치겠다는 의지는 선결조건이다.  그러한 의지를 가졌다면 이미 반은 농부이다.


내 경우가 선결조건에 대한 진중한 고려 없이 강제로 농사를 시작당한 경우이다. 그냥 부모님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도왔고 그것이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였다. 물론, 덕분에 밭에서 갓 수확한 아삭아삭한 오이, 토마토, 고추의 맛을 보고는 채소의 진짜 맛을 알아버렸지만. 그래서 어김없이 장화를 신고, 낫을 드는 엄마의 뒤를 따라서 밭으로 향한다. 물론, 반은 엄마의 성화를 못 이겨서지만.


싱싱하고 건강한 밥상의 재료들을 수확하는 것이 땀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입의 즐거움만을 위해서라기보다, 움직임으로써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보다 건강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강한 삶을 누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신성한 노동과 자신의 영혼이 공명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개인차가 있으니 주말 농장이라도 가서 체험을 해 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떨까.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것처럼 남이 지어주는 농사가 제일인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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