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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May 02. 2022

아닐 수도 있지만 맞을 수도 있는 그 확률 때문에

그 때문에 나는 오늘도 눈깔을 부라린다



이런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지난 주말. 아이와 아이아빠와 명동 남대문 일대를 돌아다녔다. 결혼+이민 전에 명동역 부근에 있던 TBSeFM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내가 가족을 잘 리드할 줄 알았는데 동네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지도앱에 의존해서 다녀야했다. 그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말 코로나 때문인 게 맞는 건가. 명동칼국수는 아직도 저렇게 줄을 서는데? 철없는 소리를 하며 돌아다녔다.


지하차도를 몇 번이나 건널 일이 있었는데 그날 아이가 치마를 입었다. 치마를 입었을 때는 다리를 오므려라, 속바지를 입어라 잔소리를 더하게 되는데 아이아빠가 자꾸 아이 옆에서 걸어서 짜증이 났다.


그럴 땐 아이 뒤에서 걸어야 맞다.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걷던 청년이 있었는데 우리가 멈추면 속도를 늦추고 우리가 움직이면 자꾸 같이 움직이는 거 같은 느낌이 들던 찰나, 그 청년이 우리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까 폰을 꺼내서 뭘 만지작만지작하는 것이다.


- 멈춰.

아이에게 말했다.

- 왜?

- 일단 멈춰봐.


청년의 휴대폰 화면을 보니 카메라앱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계단을 오르기 직전에 그 앞에서 굳이 켜서 봐야할 화면도 아니었다. 오히려 보고 있던 걸 급히 가릴 때 켜기 좋은 화면이면 몰라.

바로 이거.


우리는 멈췄고 청년은 저 화면을 보며 계속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우리가 그의 앞이 아니라 뒤에 있게 되자 그제야 나도 안심(?)하고 아이와 계단을 오를  있었다.


치마를 입지 않는 아이아빠는 영문을 모르고 이미 지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 시판 스마트폰에 무음 기능이 없는 이유는 `전화기가 무음 모드일 때도 휴대폰의 촬영음이 강제로 발생해야 한다`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정한 규정을 휴대폰 제조사가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둑촬영과 같은 불법사용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제조사는 무음앱에 대해서도 강제적으로 소리가 나게 하거나 촬영 시 LED 램프 깜박거리게 하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TV 2016년 기사)"  


명동에 간 김에 새로 열었다는 애플에 들러 새 아이폰을 구입했다. 내가 쓰던 이전 애플은 영국에서 산 거라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폰을 바꾸니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소리가 나서 아이가 짜증을 낸다. 엄마 나 그 소리 싫어. 왜 갑자기 폰에서 소리가 나? 그거 꺼.


- 한국에서 사는 폰에서 나는 소리는 끌 수가 없어...

- 왜?


아직 대답할 수 없어. 고학년이 되면 알려줄게. 지금은 엄마가 조용히 너를 지켜주지만 앞으로는 네가 너를 지켜야할 거야.


한국 여행을 준비하는 해외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게 몰카 탐지 앱이라고 하더니만, 그래도 이 소리가 앞으로 치마 입은 너의 뒷모습을 어느 정도는 지켜줬으면.


그냥 계단에서 우연히 치마 입은 여자들 뒤에 섰고 우연히 전화기를 켠 남자들이여,

나는 말입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맞을 수도 있는 그 확률 때문에

오늘도 당신들에게 눈깔을 부라릴 수밖에 없는 점,

양해바람


그리고 계단에서 여자들을 몰래 찍고

도망치듯 지상으로 나왔더라도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가

자비없는 경찰일 수도 있다는 점,

여기서 배워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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