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문에 나는 오늘도 눈깔을 부라린다
이런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지난 주말. 아이와 아이아빠와 명동 남대문 일대를 돌아다녔다. 결혼+이민 전에 명동역 부근에 있던 TBSeFM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내가 가족을 잘 리드할 줄 알았는데 동네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지도앱에 의존해서 다녀야했다. 그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말 코로나 때문인 게 맞는 건가. 명동칼국수는 아직도 저렇게 줄을 서는데? 철없는 소리를 하며 돌아다녔다.
지하차도를 몇 번이나 건널 일이 있었는데 그날 아이가 치마를 입었다. 치마를 입었을 때는 다리를 오므려라, 속바지를 입어라 잔소리를 더하게 되는데 아이아빠가 자꾸 아이 옆에서 걸어서 짜증이 났다.
그럴 땐 아이 뒤에서 걸어야 맞다.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걷던 청년이 있었는데 우리가 멈추면 속도를 늦추고 우리가 움직이면 자꾸 같이 움직이는 거 같은 느낌이 들던 찰나, 그 청년이 우리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까 폰을 꺼내서 뭘 만지작만지작하는 것이다.
- 멈춰.
아이에게 말했다.
- 왜?
- 일단 멈춰봐.
청년의 휴대폰 화면을 보니 카메라앱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계단을 오르기 직전에 그 앞에서 굳이 켜서 봐야할 화면도 아니었다. 오히려 보고 있던 걸 급히 가릴 때 켜기 좋은 화면이면 몰라.
바로 이거.
우리는 멈췄고 청년은 저 화면을 보며 계속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우리가 그의 앞이 아니라 뒤에 있게 되자 그제야 나도 안심(?)하고 아이와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치마를 입지 않는 아이아빠는 영문을 모르고 이미 지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 시판 스마트폰에 무음 기능이 없는 이유는 `전화기가 무음 모드일 때도 휴대폰의 촬영음이 강제로 발생해야 한다`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정한 규정을 휴대폰 제조사가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둑촬영과 같은 불법사용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제조사는 무음앱에 대해서도 강제적으로 소리가 나게 하거나 촬영 시 LED 램프 깜박거리게 하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TV 2016년 기사)"
명동에 간 김에 새로 열었다는 애플에 들러 새 아이폰을 구입했다. 내가 쓰던 이전 애플은 영국에서 산 거라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폰을 바꾸니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소리가 나서 아이가 짜증을 낸다. 엄마 나 그 소리 싫어. 왜 갑자기 폰에서 소리가 나? 그거 꺼.
- 한국에서 사는 폰에서 나는 소리는 끌 수가 없어...
- 왜?
아직 대답할 수 없어. 고학년이 되면 알려줄게. 지금은 엄마가 조용히 너를 지켜주지만 앞으로는 네가 너를 지켜야할 거야.
한국 여행을 준비하는 해외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게 몰카 탐지 앱이라고 하더니만, 그래도 이 소리가 앞으로 치마 입은 너의 뒷모습을 어느 정도는 지켜줬으면.
그냥 계단에서 우연히 치마 입은 여자들 뒤에 섰고 우연히 전화기를 켠 남자들이여,
나는 말입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맞을 수도 있는 그 확률 때문에
오늘도 당신들에게 눈깔을 부라릴 수밖에 없는 점,
양해바람
그리고 계단에서 여자들을 몰래 찍고
도망치듯 지상으로 나왔더라도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가
자비없는 경찰일 수도 있다는 점,
여기서 배워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