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Lisboa
16세기 중반까지 포르투갈의 배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고 컸다고 전해진다.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떠나 전 세계를 종횡무진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그건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규모와 화려함을 보면 대강 감이 온다. 하얀 대리석으로 장장 300m나 되는 수도원을 짓기가 어디 쉬울까! 하지만 포르투갈이 얼마나 대단했다는 건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수도원보다는 바로 옆의 해양 박물관 방문이 더 효과적이다.
해양 박물관에는 대항해시대의 배 모형과 조각품, 각종 지도, 난파선에서 나온 보물 등이 전시되어있다. 그중에서도 배 모형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끝도 없는 각종 배들의 행렬에 ‘덕후’가 아니고서는 다소 따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을 위해 만들었다는 아멜리아 호의 초호화 선실과 따로 마련해둔 공간에 모여 있는 각종 보트와 요트, 수상 비행기까지 둘러보고 나면 조그만 나라인 포르투갈이 다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이 공간은 그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시절에 대한 하나의 향수에 가깝다.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우리가 이랬었지, 정말이라니까! 여기 증거 있어!’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긴, 그 시절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온 대단한 나라였다. 본토보다 100배나 더 큰 식민지를 차지(식민지에서 저지른 악행들은 일단 논외로 하자)해 통치했고, 남미와 인도, 아시아를 누볐으니 그 시절을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식민지였던 곳들이 모두 독립하면서 다시 유럽 변방의 작은 나라로 쪼그라든 것도 그들 입장에선 억울할 법 한데 심지어 이젠 “포르투갈어”가 “브라질어”로 불리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럴 때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을 쓰는 건가 싶다. 아무튼 삶이란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구는 평평하기 때문에 계속 가다 보면 그 끝은 절벽에 닿아있으며 그 절벽 아래엔 바다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어 배를 삼켜버린다는 이야기가 당연하던 시절. 본래 명확한 근거가 없을수록 그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은 더 크다. 그건 반박할 근거 또한 없다는 뜻이니까. 포르투갈은 그런 원초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의 문을 연 진취적인 사람들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EU와 IMF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정말로 ‘작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어떤 것이 진짜 포르투갈의 모습일까. 잠시 머물다 가는 외지인인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근처에는 발견 기념비도 있다. 선두에 선 해양왕 엔리케를 시작으로 대항해시대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 나란히 조각되어있고, 내부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전망대에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석회암으로 장식한 “바람의 장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사 중.. 정말 비성수기에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콩알만큼도 없이 흉물스러운 모습이다. 당연히 보수 공사라는 것은 필요한 것이지만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라니. 아쉬운 마음에 멀쩡한 모습이 인쇄된 엽서를 한 장 구입하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