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에스프레소의 맛을 알게된 것은 이탈리아에서였다. 이른 아침, 바에 서서 아우성치는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들과 똑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휙- 날아오는 조그맣고 두꺼운 커피잔. 에스프레소였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커피가 날아오고 이쪽에서 저쪽으로는 커피값에 해당하는 동전이 질세라 날아간다. 이탈리아의 매일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적 여유가 되는 날은 여기에 크로와상을 하나 추가하기도 했다.
이가 시려워 찬 음료를 먹지 못하는 나는 커피도 늘 뜨거운 것만을 마신다. 그런데 한국에서 먹는 뜨거운 커피, ‘따아’는 언제나 입천장을 홀랑 벗겨먹을 만큼 뜨거웠다. 들고 걷다가 뚜껑 사이로 커피가 한두 방울 새어나오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컵을 떨어트릴 만큼 뜨거운 때도 있었다. 출근길에 다급하게 사가는 나의 모닝커피는 언제나 용암과도 같아 “너무 뜨거워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얼음 2개만 넣어주세요” 라는 요청을 매일 같이 해야했다. 그나마도 운전을 하면서는 절대 마실 수 없었다. 화상을 입거나 접촉사고를 내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나에게 이탈리아의 모닝커피는 신세계였다. 에스프레소는 원 샷에 때려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뜨겁지 않게 제공되고, 어차피 한모금 컷이니 종이컵이나 텀블러를 들고 종종걸음을 칠 필요도 없었다. 출근길에 먹는 커피는 맛이나 향으로 먹는다기보다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고 아메리카노라는 그 자체에 큰 애정이 있던 것이 아닌지라 아메리카노에서 에스프레소로 갈아타는 일은 쉬웠다. 피곤한 몸뚱이에 카페인을 빠르게 부어넣기 위한 목적을 놓고 볼 때 에스프레소가 더 효율적이기도 했다. 시간도 덜 걸리고 배도 덜 불렀다.
에스프레소에 관심이 생기면서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먹기 시작했고 자연히 에스프레소 잔에도 눈길이 갔다. 에스프레소 잔은 단순히 커피잔을 작게 만든 잔이 아니다. 에스프레소 잔은 일단 몹시 두껍다. 일반적인 커피잔이나 찻잔은 입에 닿는 부분의 두께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데 에스프레소 잔은 개인의 호불호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것이 워낙 작은 양의 음료가 담기기 때문에 잔의 두께가 얇으면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잔은 보이는 것보다 더 작은 용량의 음료만이 담긴다. 내부가 컵 모양대로 정직하게 각져있는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둥글게 굴려져있기 때문인데 이 또한 커피의 온기와 크레마를 오래 지속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잔의 손잡이도 매우 작다. 아예 손가락이 들어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요걸 손잡이랍시고 만드셨어요? 예? 하고 되묻고 싶은 잔도 시중에 꽤 많다.
처음에는 일리의 빨간 네모 마크가 달린 순백의 에스프레소 잔이 좋아보였다. 동글동글한 모양새도 귀여웠다. 하지만 나는 일리 원두에서 특유의 미묘한 인삼 냄새를 맡는 사람이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일리 커피에서 그런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 같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내 코에는 언제나 인삼 냄새가 난다. 좋아하지도 않는 원두 브랜드의 잔을 선택한다는게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그럼 우리 집 커피 머신이 네스프레소니까 네스프레소의 에스프레소 잔을 살까? 별 디테일도 없는데 너무 비싼 느낌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이게 다 조지 클루니 때문인걸까? 하는 식의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포르투갈에서 델타라는 브랜드의 에스프레소를 만나게 됐다.
커피에는 정답이 없다. 저급과 고급을 나누는 일반적인 기준이 있긴 하지만 그건 문자 그대로 일반적인 기준일 뿐, 내 입에 뭐가 더 맞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리스본과 포르투를 비롯, 포르투갈의 작은 시골동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고 온라인 상에서 포르투갈의 국민 원두라 불리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고급 원두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거나 델타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는 너무나도 내 취향이었다. 빨간 삼각형에 노란 글씨의 델타 마크가 그려진 길쭉한 형태의 잔도 마음에 들었다. 포르투갈에 머무는 동안, 이 잔을 찾아 근처 플리마켓을 비롯, 동네 빈티지 샵을 엄청 뒤졌다. 그런 잔은 근처 카페가 폐업을 해야 얻을 수 있을걸? 하는 조언을 들었음에도 쉬이 포기가 안됐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이 물건을 득템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엄청나게 빠르다는 LTE(당시는 LTE가 가장 빨랐다)의 도움을 받아 이베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누군가는 반드시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찾았다, 이 물건을 가진 사람. 그것도 무려 6세트나!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물건 상태도 좋단다. 곧바로 메세지를 날렸다. 여기 한국인데 여기까지 보내줄 수 있겠니? 여기는 북한 아니고 남한이야. k-pop의 나라 알지? 한국까지 뭔가를 보내는 일은 처음인데 좋아, 딜! 그렇게 나는 포르투갈의 국민 원두라는 브랜드의 물건을 미국에서 보내주는 항공 택배로 받았다. 포장도 어찌나 꼼꼼하게 했는지 상자 자체를 완충제로 전부 감쌌다. 포장을 이 정도로 했다면 물건 상태는 안봐도 확실하다. 역시 그랬다. 여섯 세트 모두 민트급. 잔기스 하나 없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중고라는데 에지간한 새 물건보다 상태가 더 좋았다. 이 미국인은 이런 물건을 대체 왜 갖고 있었던 걸까?
그 때 그 커피가 마음에 들었다면 잔보다는 사실 원두를 업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원두 자체는 까맣게 잊고 잔만 찾아 헤맸으니. 그 때의 나는 그랬다. 그 때 나는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증오하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만큼이나 싫어하는 일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하는데, 나의 그런 에너지 소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 같이 그 사람과 부대끼고 그 사람에게 치이면서 나는 뭔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사고하지 못할 만큼 바보가 되어있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먹으면 사라져버릴 원두보다는 영원히 내 손에 쥘 수 있는 잔을 선택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 잔을 보면 포르투갈이 생각나고 더불어 그 시절도 생각나곤 한다.
시간이 지나니 나아지더라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 일상의 반경 안에는 아직도 그 사람이 있고 나는 아직도 가끔 악몽을 꾼다. 어떤 감정은 끝내 공유될 수 없고 어떤 경험은 누군가의 평생을 바꾼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계속된다는게 중요하다. 일단 그 시절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 누군가 나를 쥐고 흔들어도 쉬이 흔들려서는 안될 이유가 생겼다. 내일 당장 전부 끝장낼게 아니라면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끌어안고 그 힘으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일 아침은 집구석 스탠딩바에서 에스프레소로 시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