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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만들어보자, 내가 만든 접시

by 나예

뭔가를 좋아하다보면 그것을 자꾸만 들여다 보고 자꾸만 만져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건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까지 전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더 궁금해지는 것이 애정과 관심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나는 그릇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업무 복귀를 이틀 앞둔 소중한 시점이었다. 자칭 타칭 그릇 덕후인 나 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찾은 공방에서의 수업 내용은, 정확히는 접시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접시에 나만의 취향을 담아 꾸미는데에 중점이 있었다. 어떤 장식을 어느 위치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접시의 느낌이 아주 달라지는데 역시 가장 어려운 점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수업에서 대개 그렇듯, 선생님에게 의견을 구해봐도 이건 이거대로 이쁘고 저건 저거대로 이뻐요 하는 분위기로 “오! 너무 귀여워요!” 하는 말만 반복하신다. 당신의 취향은 그 자체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고 나는 당신의 취향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굳은 의지가 돋보이는, 흔들리지 않는 리액션. 즉, 내가 만든 작품은 잘되거나 못되거나 오직 나의 선택이 초래한 나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백자토와 석고 틀을 활용해 디테일을 만드는 원리는 어릴 적 많이 해봤던 찰흙이나 지점토 놀이와 유사하지만 기존에 만져봤던 찰흙이나 지점토에 비해 이 흙 반죽은 정말 훨씬 훨씬 더 쫀쫀하고 단단해서 깜짝 놀랐다. 약간은 굳은 찰흙 느낌이랄까? 이 흙 반죽을 찰지게 반죽해서 빈 틈이나 헐거운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석고 틀에 꾹꾹 눌러넣어 디테일 장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작업에 생각보다 완력이 많이 필요해 한번 더 놀랐다. 역시 모든 일은 몸으로 한다. 체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세상에 없다.


가사 노동은 여자의 몫이라는 따위의 생각을 갖고 있진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릇은 여자들의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있었던게 사실이긴 하다. 일단 내 주위에는 그릇에 취미를 붙인 남자가 없기도 하고. 그래서 그릇을 만든다고 했을 때 어렴풋이 연상되는 이미지는 가녀린 손목과 팔뚝을 가진 여성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흙 덩어리를 달래듯이 살살 어루만지는 모습에 가까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물레질을 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물레질은 도자기를 만드는 여러 방식 중 한가지일 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사랑과 영혼> 속 장면이 알게 모르게 나의 뇌리 속에 깊이 박혀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자토 반죽을 꾹꾹 눌러 석고 틀 속에 밀어넣고 틀 바깥으로 삐져나온 부분의 반죽은 엄지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빗겨 밀어 벗겨낸다. 이 과정에는 힘도 많이 들거니와 엄지 손가락의 피부가 반복적으로 쓸리는 아픔이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도 틀 바깥으로 이 디테일을 꺼내는 과정에서 찢어지기도 하고 늘어지기도 한다. 무사히 잘 꺼냈다 해도 접시에 배치하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회생불가다. 야속하게도 반죽부터 다시 해서 다시 석고 틀에 밀어넣어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애당초 나는 화려한 스타일로 만들거라는 마음을 먹고 갔던지라 그만큼 장식적인 요소를 많이 만들어야 해 시행착오도 많았고 시간도 제법 걸렸다.


어찌저찌 완성한 작품을 건조시킨 후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어 구워내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대략 한 달 반이라 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내용은 내가 관여하지 않아 알 수 없고 전부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신다. “굽다가 깨지면 어떡해요?” 라는 내 질문에 “그런 일은 거의 없긴한데 만약 그렇게 되면 제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드려요”라 하시는 선생님. 생각만 해도 별로다. 부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완성품을 마주하고 보니 기대 이상인 부분도 있고 기대 이하인 부분도 있고,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예쁠거라 예상했던 부분은 생각보다 그저 그랬고 별 기대 없이 만들었던 부분이 더 앙증맞고 귀엽게 완성되어 있어 또 한번 놀랐다. 새로운 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역시나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는게 아닐까. 요즘 들어 너도나도 루틴을 강조하고, 실제로 루틴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매일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은 못된다.


내가 만든 접시는 생고생을 하며 만든 장식적인 요소 덕분에 제법 화려하게 완성이 됐지만 청화백자 스타일이라 에지간한 다른 식기와 아무렇게나 매칭해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개시를 위해 집에 있는 푸르스름한 잔을 꺼내고 재빨리 에그 타르트를 구워봤다. 찰떡까진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좀 더 찰떡인 조합을 찾아 우선은 그릇장 안에서 이리저리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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