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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15. 2017

리스본 성당 투어, 두번째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31

"리스본 성당 투어, 첫번째"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리스본을 거닐며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은 전부 리스본 대지진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으로 나뉜다. 다르게 말하자면 대지진을 버텨낸 것과 버티지 못한 것(= 이후 복구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5분 간의 지진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한 곳이었던 리스본의 90%를 파괴했고 이후 닷새 동안 도시가 불탔다고 한다. 이 때 일어난 쓰나미는 핀란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큰 지진도, 쓰나미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당시 지진은 리히터 규모 8.5~9.5 정도로 추산된다.)


지진 이후에는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건물들을 재건축해야했기에 당연히 장식적인 면보다 실용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복구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사용된 아줄레주들은 그 이전이나 이후 시대의 것들이 비해 정교함이 떨어지는게 확연히 눈에 보인다. 이건 아줄레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때 복구된 많은 길들은 그저 반듯하다. 그 길을 따라 양쪽으로 더 반듯한 건물들(이 건물들은 한국의 아파트들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비슷비슷하게 생겼다.)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도시는 빠르게 재건됐다. 특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복원된 곳은 알파마 정도로, 알파마의 뒷골목을 헤메이다가 갑자기 이런 길로 넘어오면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이쪽이 확실히 깔끔하긴 하지만 딱 그만큼 걷는 재미도 없어진다.


# 리스본 대성당

그 와중에 리스본 대성당은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견고함의 결정체와 같은 곳이다. 삐걱거리는 트램이 오르내리는 언덕 위로 등장한 두 개의 종탑은 생긴 것부터 무척이나 단단하게 생겼다. 자칫 딱딱하고 심심할 뻔한 성당의 외관은 중앙 출입구 위의 커다란 장미창 덕에 특유의 압도감을 뿜어내기도 했다.


성당 내부에는 종교적인 보물들이 제법 많았다. 성물 안치소에 놓인 석관은 리스본의 수호성인인 상 비센테의 것이고 한쪽에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를 위한 성소도 마련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보물들과 제단화 등은 유리 벽 뒤로만 감상 가능해 조금은 아쉬웠다. 아무리 투명한 유리라 해도 빛이 반사되는 통에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성당 건물 자체는 무사하지만 사실 성당 뒤쪽으로 이어지는 정원과 회랑 등은 지진 당시 파괴되었기에 보존 상태가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게다가 훼손된 정원과 회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더 예전의 집터가 발굴되어 지금은 복구보다도 발굴 작업에 힘쓰고 있다고 하니, 완전히 복원된 성당의 모습을 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리스본은 상처를 최대한으로 회복해 낸 용사의 느낌이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었고 최선을 다해 그 상처를 잘 봉합했건만 어쩔 수 없이 흉터는 남은, 그런 용사를 닮았다. 무척이나 강인하면서도 사연있는 도시임이 분명하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사연있는 이에게 매력을 느꼈다. 사연이 있으면 대개는 상처도 있다. 하지만 더 살아보니 알겠다. 일단 상처를 입었다면 잘 회복하는게 최선이지만 더 최선은 애당초 상처를 입지 않는 것임을. 아무리 잘 아문다 해도 매끈하고 티없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 아무것도 없었던 때로는 절대 다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겁하다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한들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게 답인 듯 싶다. 물론 소나기인지 장마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은.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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