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할 수밖에 없었던
고구마순 김치
어느 화가의 생존 밥상 44-1
어려서는 고급스러운 개성 보쌈김치가
최고인 줄만 알았다.
뜨거운 젊은 시절에는
잘 익근 돌나물 물김치의 시원함이 다였다.
30대 때에는
삼겹살에 어울리는 것은
역시 전라도의 진한 김치라 주장했었다.
사십 대 중반에는 담백함에서
함흥 김치에 매료되었다.
최근에는 아릿한 맛의
청갓 김치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생각했다.
커 가며 맛보아 온 감동의 주인공들이고
각기 그럴듯한 개성을 뽐내는 맛들이다.
그러기에 순위를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구마순 김치가 익고 나서는
그러한 생각이 바뀌었다.
익기 전과 후의 대변신.
그 오묘한 감칠맛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치의 지존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음미하며 먹다 보니
비슷한 맛으로 부르고뉴 최상급 와인 맛이 난다.
허~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그 풍미 말이다.
부르고뉴 와인의 여성적인 면이 있다는 것처럼.
디테일이 살아있는 맛이라는 점에서
김치의 젊은 여왕이라 칭하고 싶어 진다.
그리하여 여러 실험을 하게 된다.
밥에 기름 두르고 비벼도 먹고
볶아도 먹어 보고
볶음 국수도 해 먹고
김치찌개도 끓여 본다.
모든 면에서 그 진가가 확인된다.
검증 완료!
남자가 여자의 매력에 빠져들면
뭔 짓을 못할까.
진저리 쳤던 껍질 까는 묘수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곧 찾아냈다.
손톱으로 일일이 뜯어가며 까지 않고
꺾어서 벗겨 내는 것이다.
시원하게 말이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거나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은
좋은 음식임에 틀림없는 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