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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23. 2020

여름 보양식, 8월 민어

어느 화가의 생존 밥상 U





여름 보양식으로 선조들은

일 민어탕

이 도미탕

삼 보신탕을 꼽았다.

사실 민어는 뭐니 뭐니 해도

한 마리에 얼마 안 되는 부레를 먹으면

다 먹은 거다 진배없다.

그만큼 고소함이 일품이다.



중학교 동창들에 바람을 넣으니

동창 미망인 부인이 하는 식당에서

민어회와 탕을 먹게 되었다.


일찍이 유명을 달리한 중학교와

등학교 동창은 홍재석이다.

그 동창은 아직도 동창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 학교 짱으로

그 일대를 휘어잡았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내가 들은 얘기만 해도 꽤 된다.

대충 요약하면 이러하다.

호리호리한 그 친구는

중학교 때 동네 양아치들에게 하도 맞고 다녀서

형에게 안 맞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으니

형이 집에 샌드백을 하나 설치해서

그것만 줄곧 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안 맞으려 그리 했더니

원펀치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힘 빼고 많이 쳐서 생기는 원펀치는

힘을 빼니 속도가 생기고

속도가 생기니 내부 기운이 솟아난다.

일명 우리말로 한 방인 것이다.

그 한 방의 소리는 샌드백에서도 달리 들리는데

펑! 펑! 하고 뭔가 기운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그것이 생긴 사람은

일단 세상에 겁이 없어진다.

뭐가 되었든 간에 한 방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 방이 생긴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대동하는 짱이 되어 갔다.


고등학교 때는 옆 학교 애들을 하도 괴롭혀

그쪽 짱 하고 맞짱을 붙게 되었는데

옆 학교 짱이라고 나온 짱이 중학교 동창이라 게임 끝.

야간도 중학교 동창들이 배치되어 있어 접수.

그리하여 그 일대가 평정되었던 것이다.


학교 졸업 후, 그 친구는

집안에 불광동 땅이 꽤 있어

서오릉 근처에서 난을 키우다

호주에 4년 갔다가

미국으로 부인하고 넘어간 지 7년 차에

심경색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한다.





위의 내 글에 중학교 다른 친구가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한다.



상상 외 글이 올라와 읽고 난  후
갑자기 밀려오는 가슴 먹먹함은 나만의 감정일까~~?

홍재석~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이런 청소년 시절의 소설 같은 전설은 없을게다.

그가 짱이 되었던 것은
싸움을 아주 잘해 된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용기 있는 짱이 학교의 없었기 때문에

떠 밀려 짱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요즘의 일진회? 의 아이들 같이
말 그대로 못된 짓은 절대 아니고

정의로서만 주먹을 사용했다.
절대 약한 자는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약한 자를 건드리는 못된 자를 응징했다.



 방!
그 한 방의 전설의 가장 큰 사건은

연합고사 시험 전날 시험장 배정 날

청운동 경복고에서
당시 종로 2가에서는 안하무인 격인

중동중학교와 우리 중앙과의 패싸움이었다
재석의 소위 선방으로 시작한 학교 싸움은

효자동 골목의 모든 상가는 아작이 나고
광화문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싸움 시작할 즘의 그림이 눈에 선하다.
마치 당시 인기 있던 프로
복싱 시작 전과 같이
재석과 중동 짱의 눈싸움부터 시작이었다.
주위에는 두 학교 학생들이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었다.
어린 16살 치고 조숙한 행동들이었다.
재석은 머리도 영리하였다.

당시 교실 배정 전에 상황이 벌어졌는데
선방의 대명사 재석은 그때는 참고
배정 후 전쟁은 시작되었다.
왜?  배정 전에는 우리 중앙이 열세였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중앙의 대 완승이었다.


그 외 다수 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의 주먹의 최고 시절은
해병대 제대 후 잠시 쉬고 있을 때, 

은평구의 소위 동네 녀석들을
한 명씩 찾아가 다이다이~!! 100전 100승이었다고.
해병대에서 맞는 기술까지 익혀와

그때가 재석의 최고의 절정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재석은 여자관계도 대단했다.
별명이 킹콩이었다.
그 부분 전설적인 이야기는  많은데
무대가 밴드이고 무엇보다
내 손가락이 아파 생략하겠다.
여하튼 그의 여성 편력은
상대, 장소, 이유 불문이었다.
하긴  지금은 카리스마라고 하지만
당시의 그의 박력에 안 넘어가는 여자가 없었다.
그의 눈에 꽂히면~~?? 상상에 맡길 뿐이다.

재석은 친구도 많았고 친구도 좋아했다.
난 그 덕분에 그의 모교
충암고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머지않아
그가 세상을 뜬 지가 20여 년 다가오고 있다
사실 우리 중앙 모임의 시작도

그가 저 세상 가면서 그와 절친이었던

용우의 입을 통하여 전달되어 시작되었다.

죽은 재석이 우리에게 해 준 선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불광동 출신의 자칭 촌놈이라고 하면서
집안 에 그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털털하고 서민적이며

친구와 소주를 사랑했고

의리와 정의로서 세상과 흥정했던 홍재석!!
싸움만 잘했던 기억보다
그가 내게, 친구들에게 남겨놓은

그의 추억의 향기가
아직 진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해서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친구들은
홍재석 이름 석자는 잊지 않고

추억으로 간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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