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이 부끄러워 아이를 혼냈을 때

내가 직업을 숨겼던 이유

by 레몬팝콘

"누가 엄마 직업 말하고 다니래? 왜 얘기했어?"

다그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가 항변한다.


"내가 말 안 했거든. 친구가 학원 선생님한테 말한 건데 왜 나한테 그래?"

아이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뚝뚝 묻어난다.

눈빛에도 억울함이 가득하다.


순간, 후회가 된다.

왜 나는 아이를 혼냈을까.


기자라는 직업이 평범한 이유

난 내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특별히 좋다거나 잘난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취재기자는 매일 선배에게

기사 똑바로 쓰라고 혼나고

취재원에게 욕을 듣기도 한다.


대형 언론사 소속이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언론사가 박봉이다.


연봉이 낮은 직장인의 자존감이 높을 수 있을까?


기사에 내 이름을 걸 때 느끼는 책임감은 있지만, 결국 기자도 월급쟁이다.

나는 그저 소시민일 뿐이다.

그래서 내 직업은 특별하지 않았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아이에게도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모든 어른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했다.


나는 식당에서 종업원을 '이모'라 부르는 게 늘 불편했다.

그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인데

왜 이모 아니면 언니라고 불려야 할까.


청소하시는 분을 보면 아이에게 말했다.

"청소선생님 오시네"


트라우마

처음엔 내 직업을 숨기지 않았다.

결혼하고 지방에 살 때도 당당히 기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 나는 어린애를 두고 출근하는 독한 엄마가 되었고,

교수·의사 학부모와 모임을 만든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사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던 워킹맘이었을 뿐인데,

없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다'는 말은 틀릴 수도 있구나.


새로운 곳에서는 꼭꼭 숨자

몇 년이 지나 이사를 가게 됐다.

이번에는 내 직업을 숨기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당부했다. "엄마 직업은 말하지 마"


그러다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부모님이 하는 일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과제를 받았다.


아이는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엄마를 그렸다.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은 내 직업을 알게 됐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비꼬는 시선도 있었다.


나는 점점 동네에서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됐다.

그게 내 생존방식이라 여겼다.


후유증

얼마 전, 아이가 새로 다니게 된 학원에

교육비를 내러 갔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OO어머니, 기자시라면서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혼냈다.

왜 엄마 직업을 말하고 다니느냐고.

아이는 친구가 말한 거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제야 아이가 그린 그림이 떠올랐다.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엄마의 모습.


엄마처럼 본인도 노트북을 할 거라며

도화지와 색종이로 열심히 노트북을 만들던

꼬물꼬물 한 작은 손.


나는 왜 아이를 혼냈을까.

나는 내 직업을 숨기며 살아왔지만,

아이는 나를 숨기지 않았다.


아이에게 나는 기자가 아니라 엄마였고,

글을 쓰는 어른이었을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사회의 시선에 가둔 것이 아닐까.


다시 곱씹게 된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특별한 직업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 속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내가 딸의 엄마이듯이…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이미 특별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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