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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참깨를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벌써 2년차

by 김효원

얼마 전 농사지은 참깨를 팔아서 10만 원을 벌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발생한 첫 매출이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짜리 두 장이 담긴 봉투를 선반에 소중하게 올려놓았다.

참깨를 팔아 번 10만 원은 여느 10만 원과는 다른 기분이다. 마치 100만 원쯤으로 느껴진달까.

참깨 손님이 돈을 넣어 건네준 봉투는 샛노란 색으로 참기름 색깔과 닮았다. 오래 간직하기 위해 봉투에 ‘참기름 판 돈’이라고 쓰고 그날의 날짜를 적어두었다.

참깨농사를 지어 첫 매출을 냈다. 사진=김효원

“효원~ 참깨를 사고 싶은데 팔 물량이 남아있을까?”

30년 전 직장에서 만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승주 선배가 카톡을 보내오셨다.

마음 착한 승주 선배는 “참깨 농사에 17만 원을 들였는데 남는 게 없다”고 쓴 내 브런치 글을 보고는 팔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선배에게 내 참깨의 상태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선배, 참깨가 농약도 안 치고 비료도 안 쳐서 그런지 알이 작고 색도 거무튀튀해요. 뽀얗고 통통한 참깨와 거리가 멀어요.”

“괜찮아. 국산 참깨를 믿고 살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승주 선배는 참깨를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와 나눠 먹으려고 한다면서 1kg씩 3kg을 구입하겠다고 하셨다.

올해 농사지은 참깨는 모두 12kg이다. 소매로 팔지 않고 모두 집에서 먹겠다고 계획했었는데, 계획이 조금 바뀌어 승주 선배에게 3kg을 팔게 되었다.

엄마에게 참깨 주문이 들어왔다고 알리자 그날부터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셨다.

참깨를 까불러 티끌을 더 날렸고, 먼지 같은 걸 없애기 위해 참깨를 물에 씻어 건진 후 채반에 올려 건조하는 과정을 거쳤다. 깨를 물에 담그면 먼지와 티끌이 물에 뜬다. 또 알이 덜 차 가벼운 참깨도 물에 뜨기 때문에 알이 꽉 찬 참깨만 남길 수 있다.

엄마가 갈무리해준 참깨를 어깨에 메고 참깨 고객님인 승주 선배네 집 근처로 갔다. 선배는 동네에서 오래된 맛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싱싱한 고기와 채소를 냄비에 끓여 먹는 샤브샤브를 먹고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우리가 먹은 게 모두 참깨 몇 kg 값일까?

참깨 농사를 지은 후에는 모든 돈 계산을 참깨값에 견주는 버릇이 생겼다. 오래 전, 책을 처음 냈을 때 “이 돈이면 책을 몇권 팔아야 하나” 계산했던 것처럼.

승주 선배는 집에서 직접 재봉틀로 만든 식탁 매트와 참깨 값을 넣은 예쁜 봉투를 함께 내밀었다. 평소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선배가 만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선물에 감동이 두배로 커졌다.

고객에게 밥도 얻어먹고, 선물도 받는 농사꾼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정한 승주 선배가 직접 만든 테이블 매트를 선물로 건네주셨다. 사진=김효원

승주 선배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옷을 채 갈아입기도 전에 선배의 메시지가 울렸다.

“참깨를 볶았어. 볶으니까 엄청 통통해졌어. 맛도 무척 고소해.”

선배는 후배가 농사지은 국산 참깨를 구입했다고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께 얘기했더니 두 분 다 너무 좋아하셨다고도 했다. 선배가 보내온 메시지에는 참깨를 볶는 과정 사진이 조르르 딸려왔다. 심지어 참깨가 톡톡 튀는 동영상까지 찍어 보내셨다.

승주선배가 볶은 참깨. 사진=최승주

초보 농사꾼의 부실한 농산물을 기꺼이 구매해 주고, 맛난 밥을 사주며 노고를 치하하고, 또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다정한 선배 덕분에 한 해의 힘겨움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선배가 볶은 참깨를 보면서 나도 어서 참깨를 볶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참깨를 톡톡 볶아서 친구들을 불러야지. 고소한 참깨를 듬뿍 넣어서 김밥도 만들어주고, 나물도 무쳐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또 기분이 좋아졌다. 농한기는 이렇게 고소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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