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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장마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벌써 2년차

by 김효원

하늘에서 내리는 건 무엇이든 다 좋다. 비든, 눈이든, 우박일지라도.

이렇게 글을 썼던 시절이 있었다. 이 고백은 대체로 유효하지만,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수정되기 시작했다 .

하늘에서 내리는 건 무엇이든 다 좋다. 비든, 눈이든, 우박은 빼고. 그리고 적당한 때에 적당히 올 것!

지난주의 일기예보. 온통 비비비였다.

가을하늘은 우리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귀가 닳도록 배운 “천고마비, 높고 푸른 하늘”이어야 마땅하고 옳다. 그런데 그 마땅하고 옳은 게 그렇지 않게 되었다.

10월의 장마 때문이다. 이달에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열흘이 넘게 비가 내렸다. 농사 달력에는 ‘가을장마’란 이름은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야 넣어야 할 판이다.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10월 15일 기상청이 집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9월 1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서울.수도권에 내린 비가 328.1㎜였다. 이는 평년(1991~2020년) 95㎜보다 약 3.5배 많은 수치다. 또한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두번째로 많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올 여름에 여름 장마가 조용히 넘어갔다. 설레발이라고 할까봐 저어되긴 하지만 태풍도 한반도를 곱게 비껴갔다. 고마운 날씨라고 안심했는데 뒤늦은 복병, 가을비가 온 들판을 적시고 말았다.

모든 농사가 끝난 후라면 가을비를 마뜩잖아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직 들판에는 추수를 앞둔 벼가 있고, 밭에는 고구마, 배추, 무가 자라고 있다.

우리집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김장배추는 배추무름병 때문에 점점 썩어가고 있다. 이번주에도 썩어가는 배추를 몇포기 뽑아왔다.

5도2촌인 우리집이야 배추 몇포기 손해보는데서 끝나지만 농사를 대규모로 하는 전업농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곧 추수해야 하는 벼가 비를 맞아 논에 쓰러져있다. 쓰러진채로 비를 오래 맞으면 싹이 날지도 모른다니 걱정이다. 수확해야 하는 고구마도 밭이 질어서 캐지 못해 상품 가치가 떨어져 걱정이란다. 고구마는 제 때 캐지 않으면 섬유질이 질겨진다고 한다.

배추무름병도 우리 마을 전체를 덮쳤다. 마을에서 배추가 온전한 집이 몇 집 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는 농사에 있어 필수요소다. 비가 안 와도 큰 문제다. 농부들은 비가 안 오는 게 많이 오는 것 보다 낫다고들 말한다. 비가 안 오면 물을 떠다 주면 되지만, 내리는 비는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같은 가을 장마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노지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어려워진다. 모든 작물에 비닐하우스를 씌워야 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성들인 작물과 채소들은 가을 장마에 신음하고 있는데 잡초들은 생생하다.

“세상은 어쩌면 이렇게 아이러니할까. 애써 키우는 건 썩고 쓰러지고, 심지도 않은 건 이렇게 잘 자랄까.”

마음 한 켠에서는 잡초가 기특한 생각도 든다. 누가 심어주지도, 돌봐주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어도 풍성한 씨앗을 맺은 풀. 사진=김효원

자연은 늘 불공평하지만, 동시에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살아남을 틈을 준다.

그리고 순응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10월의 장마는 싫지만, 농부들은 또 그 안에서 극복해가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인류가 농사를 지어온 1만년동안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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