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허무하게 끝난 올해의 김장대첩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벌써 2년차

by 김효원

지지난주 주말 시골집에서 김장대첩을 치렀다. 작년에 100 포기가 넘는 김장을 담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리부터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내려갔으나, 결론부터 말하면 심심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올해는 배추가 흉작이라 김장 양이 줄었다. 사진=김효원

올해는 가을비가 유난히 잦았던 까닭에 배추 농사가 흉작이었다. 배추무름병이 와서 배추가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기에 배추 작황이 좋지 않을 것은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한 배추가 적어도 너무 적었다. 죽은 것을 빼고 멀쩡한 배추를 골라놓고 보니 약 삼사십 포기 정도였다. 어떤 배추는 속이 덜 차 배추라기보다는 얼갈이에 가까웠다. 150 포기를 심었는데 삼사십 포기를 건졌으니 30%도 채 되지 않는 참혹한 성적이다.

배추무름병으로 죽은 배추. 사진=김효원

김장을 하기 위해 시골에 내려간 날은 마침 절기상 입동이었다. 시골집에 도착해 팔을 걷어붙이고 배추를 뽑으려는 찰나, 엄마가 말씀하셨다.

“오늘이 입동이네? 입동에는 배추를 만지면 안 되니까 오늘은 배추를 뽑지 말아라.”

난생처음 듣는 미신에 나와 동생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입동에는 배추를 뽑으면 안 된다고요? 그런 미신이 있어요? 처음 듣는걸요. “

엄마는 “입동에 배추를 만지면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 옛날부터 꼭 지켰다”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말씀에 따라 배추 뽑기가 하루 미뤄졌고, 결국 절이기, 김치 담기가 순차적으로 하루씩 밀렸다.

동네 친척 아재네 집에 마실을 갔더니 동네 배추가 다 흉작이라고 하셨다. 배추가 제대로 된 집이 거의 없어서 다들 밖에서 배추를 사다 김장을 담고 있다고.

무는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사진=김효원

다음날 아침 일찍 배추를 뽑기 시작했다. 작황이 좋지 않은 배추와는 달리 무는 매우 잘 자라 풍성했다. 키울 때도 수월하고 병충해도 덜하고 김치 담을 때도 편한 것이 무가 아닌가. 배추는 줄이고 무를 더 많이 심어야겠다고 머릿속에 되새겼다.

배추와 무를 뽑아 손질해 소금에 절여놓고 우리 가족은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고 건넛마을로 출동했다. 마침 이웃마을에서 ‘도천리김장축제‘가 열린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동안 축제를 구경하고 밥도 먹고 오기로 했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과거 도천초등학교 자리였다. 학생이 줄어 학교가 폐교돼 버려져있던 것을 미을 주민들이 쓸고 닦아 쉼터로 활용하고 있었다.

도천리 김장축제 모습. 사진=김효원

11시쯤 도착해 보니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차양이 둘러쳐져 있고 사람들이 사오십 명 남짓 모여있었다. 한 켠에서는 동네 농산물을 파는 매대가 마련됐고, 특산물 판매부스도 있었다. 고추장 만들기 체험코너에서는 500그램짜리 고추장을 만들어 무료로 챙겨 올 수 있었다.

점심은 동네 어르신들이 만들어 파는 5000원짜리 백반과 메밀전병, 어묵국 등을 구입해 한 상 차려 먹었다. 동네 부녀회에서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메밀전병이 따뜻하고 맛있었다.

훌라후프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어 상품을 탔다. 사진=김효원

몇 개의 게임에도 참여했다. 먼저 신발 양궁. 신발을 던져 과녁에 가장 가깝게 넣은 사람이 상을 받는 경기다. 신발을 냅다 던졌는데 과녁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심기일전해 집중했지만 순위권 탈락.

다음은 훌라후프 오래 돌리기 대회. 3위 안에 들면 상품을 받는 경기였는데 3위 안에 들어서 부상으로 칼 선물세트를 받았다. 평소 훌라후프를 연습한 덕을 크게 보았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노래자랑이었다. 평소 노래 좋아하는 엄마의 등을 떠밀어 대회에 출전하시게 했다. 팔순이 넘어가 귀가 잘 안 들리게 되자 엄마의 노래 실력이 크게 줄었다. 반주 소리가 잘 안 들려 박자를 몇 번 놓친 엄마는 수상자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참가한 사람에게 모두 제공하는 빨간 소쿠리를 받았다. 처음 참여한 김장축제에서 칼 세트와 소쿠리를 득템 한 우리 가족은 “내년에는 미리 연습을 철저히 하고 참여하자”라고 각오를 다졌다. 엄마가 내년에 노래자랑에서 무슨 노래를 부르면 좋을까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주민 노래자랑 모습. 사진=김효원

사실 도천리는 외갓집이 있었던 마을이다. 운학리라는 심심산골에서 살던 엄마가 우리 동네로 시집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외갓집이 우리 집과 다리 하나 건너인 도천리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외갓집 나들이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간단한 여정이었다. 도천리에 사셨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큰 외삼촌이 도천리 집을 팔아 외지로 떠난 후 도천리는 아무 연고가 없는 마을이 됐다. 발걸음 할 일이 없었던 도천리에 축제를 핑계 삼아 올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축제의 제목인 김장축제는 마을에서 절임배추와 양념을 만들어 체험비를 내고 김치를 담아가는 프로그램이 하이라이트다. 10킬로를 담아가는데 9만 4천 원. 20킬로는 18만 원이었다. 절임배추는 물론 양념까지 모두 만들어주니까 버무리기만 하면 김장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었다. 내년에는 도천리김장축제에 와서 흥겹게 놀고 김치까지 담아가기로 가족들과 의견을 모았다.

몇 포기 되지 않아 간단하게 끝난 김장. 사진=김효원

실컷 놀고 오후 네다섯 시쯤 집으로 돌아와 쉬엄쉬엄 무 채를 썰고 김장 속 재료를 만들며 내일의 김장을 준비했다.

다음날 아침 절인 배추를 씻어 채반에 건져놓고 김치를 버무릴 준비를 했다.

배추가 몇 포기 되지 않아 배추 속을 넣어 김치를 버무리는 작업은 쉽고 간단하게 끝났다. 그 사이 무를 썰어 깍두기를 담고, 무를 큼직하게 썰어 섞박지도 담았다. 김장을 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았던 2박 3일의 김장대첩이었다.



keyword
이전 14화농한기의 영월 나들이, 마차리 국제아트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