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어쩌다 농부]벌써 2년차
지난 주말, 참깨를 털었다.
참깨를 베어 평상에 세워 놓은 뒤 해외여행을 일주일 넘게 다녀왔더니 그동안 참깨 대가 바싹 잘 말라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참깨 대를 거꾸로 들고는 작대기로 툭툭 두드렸다.
쏴아아아, 쏴아아아. 참깨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비 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미끄럼틀 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깨 쏟아지는 소리가 도파민을 자극하는지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작업에 돌입한 지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간식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일에 집중할 만큼 신나는 작업이었다. 일을 다 끝내지 못했는데 해가 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해 뜨는 것과 동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깨 수확량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일곱 시부터 어제 못다 한 작업을 이어갔다.
깨를 모두 털고 난 후에는 구멍이 성근 체를 이용해 검불과 깨를 분류했다. 이어 티끌과 먼지를 날리는 세심한 공정은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소싯적 솜씨를 발휘해 키질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는 언제 적 물건인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키가 있다. 방물장수들이 드나들며 옛날 물건들을 거의 다 가져갔는데 키만큼은 용케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저런 허술한 물건이 제대로 작동할까 싶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엄마는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달인 수준으로 키질을 하시는 게 아닌가.
엄마가 손을 움직여 키질을 할 때마다 먼지며 깨 껍질이 튕겨져 나가고 키 안에는 뽀얀 참깨만 가득 남았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 엄마가 키질하는 동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남겨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작업을 모두 끝내고 참깨를 김치통에 넣어 보니 2통이 나왔다. 저울에 달았더니 모두 12kg이었다.
작고 뽀얀 참깨가 그저 예뻐서 엄마와 동생과 나는 참깨를 담은 김치통 앞에 앉아 참깨를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봤다.
올해 농사가 풍년인지 아닌지 계산을 안 해볼 도리가 없었다. 깨 농사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17만 원. 참깨 가격은 1kg에 2만~2만5천원. 12kg이니까 24만 원. 24만 원 빼기 17만 원은 7만 원. 3명이 농사지었으니까 내 몫으로 2만 3333원이 떨어지는 셈이다.
엄마와 동생과 나는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우리를 두고 하는 말임을 깨닫고 깔깔깔 웃었다.
농사지은 참깨는 한 톨도 팔지 않고 다 먹기로 했다. 너무 아까와서 팔 수 없기도 하려니와 7만 원을 벌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사 주세요”라고 말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싫어서였다.
게다가 상품으로 판매하기에는 참깨 색깔이 다소 검고 살도 통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상의 상품이 아닌데 판매할 생각을 하니 어쩐지 양심이 따끔따끔해지는 것이다.
엄마네, 동생네, 오빠네 등등 식구들이 볶아서 깨소금으로 먹고 참기름 짜서 기름으로도 먹으면 12kg쯤은 금방 먹을 수 있을 터였다.
심사숙고 끝에 엄마와 동생에게 “내년에는 참깨 농사를 짓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팔순이 훌쩍 넘으신 엄마와 몸무게 45kg인 여동생을 더 이상 부려먹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혼자 하기에는 벅차다.
5도 2촌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득 나는 농사를 짓기 어려우니, 가급적 한 번 심으면 계속 수확할 수 있는 품목을 더욱더 가열하게 찾아보기로 했다.
농사 2년 차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첫 농사에서 심사숙고해 찾아냈던 작약이 최고의 품목이었다는 깨달음이 번쩍 왔다. 갑자기 썬연료 cm송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조강지처가 좋더라. 썬연료가 좋더라. 친구는 오랜 친구 죽마고우. 국민연료 썬연료.“